엄청난 액수도 문제였지만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어떤 근거(예를 들면 영수증 등)도 없이 그저 무조건 가져가는 회장의 무리수를 필자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해운 주간지의 장래를 위해서도 이 사태를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오랜 기간 고심 끝에 어느 날 회장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주로서 행하는 일인 만큼 필자가 간섭할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만약 세무당국에서 이를 감지, 조사가 나온다면 회사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감안, 대책을 세워달라고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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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답이 참으로 엉뚱했다. 세무당국이 조사 나온다면 그 때는 돈으로 막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대표이사로서 필자의 몫이라는 변을 듣게 되었다. 너무나 실망한 필자는 이때부터 해운 주간지 사장 자리를 오래 앉아있을 수 없음을 감지했다.
여기에 또 하나 결정적인 변수가 발생했다. 전임 사장인 사주의 6촌 동생이 필자에게 자신이 새로운 해운 주간지를 창간할 터이니 도와달라는 주문이었다. 이는 전임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다짐을 받은 사항이기도 했다. 필자가 난색을 표하자 전임 사장은 이번에는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필자 없이는 해운 주간지를 발행할 수 없는 만큼 기존의 해운 주간지 비리 자료를 세무 당국에 송부, 필자가 사장을 맡고 있던 한국 최초의 해운 주간지를 공중분해 시켜버리겠다는 엄포였다.
처음 사회생활을 한 직장인 한국 최초의 해운 주간지에서 공채기자로 입사, 대표이사 사장까지 역임하게 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회사를 떠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사주의 비합리적 회계 처리로 고심하게 된 차 전임 사장의 회사 공중분해 위협이 더해지자 어쩔 수 없이 필자는 사직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사직서를 사주 회장에게 내밀었다. 그랬더니 회장은 기겁을 하면서 곧바로 말리기 시작했다. 그 강도가 보통이 아니어서 잠시 화장실을 간다고 말하고 화장실에서 바로 회사를 나와 다니던 교회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필자를 기다리다 회장은 급기야 필자가 살고 있던 아파트로 찾아왔다. 그러나 필자가 회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전언을 듣고 회장은 밤늦도록 필자가 교회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날이 마침 수요일이어서 수요예배를 마치고 아파트로 들어서는데 회장이 기다리고 있어 상당히 놀랐다.
그리고 방배동의 어느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었다. 회장은 수차례 간곡히 사직을 말리면서 설득을 계속하자, 전임 사장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해운 주간지를 공중분해 시키겠다고 위협해 왔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이에 회장도 당황, 좀 더 생각해 보자고 말리면서 일단 사표를 반려하겠다고 말하면서 사표를 필자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이날 이후 회사에 출근하면 회장은 곧바로 필자를 호출, 기나긴 설득을 계속해 나갔다.
이 같은 상황을 전임 사장이 심어놓은 직원은 곧바로 전임 사장에게 보고했다. 이에 전임 사장 L씨는 좀 더 구체적으로 강도 높은 위협을 가해왔다. 이번에는 필자가 회장을 계속 설득해 나갔다. 제발 회사와 임직원들, 그리고 회장 자신을 위해서라도 필자의 사직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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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L씨와 해운 주간지 주식을 반반으로 나누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자신이 사장으로 취임하되 모든 운영비는 자신이 조달하겠다고 말했다. 필자는 해운 주간지가 발행되도록 편집 분야를 책임져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면서 한국 최초 해운 주간지 영업이사로 재직 중인 J이사를 편집국장으로 선임하자고 제의했다. 그래야 해운 주간지에서 편집 경험이 있는 J이사를 활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J이사는 필자 밑에서 중간 간부로 입사, 편집차장과 편집부장을 역임했는데 사주의 고교 동기생 L대표이사 전무와 은밀히 만나다가 들키자 자진해서 영업부로 갔다. 그리고 전임 사장이 이사로 승진시킨 인물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제의를 단연코 거절했어야 했다. L씨가 깔아놓은 덫에 필자가 걸려든 것이다. J로서는 편집국장 업무를 할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 단, 필자가 모든 편집인으로서, 특히 J가 문외한인 입출항 스케줄 작성이나 심도 있는 연재 등 필자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뒤 필자를 회사에서 내몰거라는 무서운 흉계를 숨기고 말이다.
필자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설사 J나 L이 장난질을 하더라도 신생 해운 주간지 주식의 50%를 지닌 필자에게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하지만 L씨의 계략은 놀라웠다.
먼저 필자에게 3-4일 집안 일로 지방에 내려간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다음 수순으로 L씨의 심복인 경리과장이 필자를 찾아왔다. 그가 말하기를 “곧 세무당국이 한 해 동안의 결산을 신고하는 적자가 너무 심해서 두 분 대주주에게 피해가 올 수 있어 필자의 주식을 잠시 L사장에게 위탁,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원위치 하게 된다”라는 내용이었다.
조금은 미심쩍었지만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때라서 L사장이 어디로 갈지 말한 바 없어 L에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경리과장은 내일까지 기일을 지키지 않으면 범칙금이 붙어 더 큰 손해가 사장에게 돌아올 수 있으니 내일까지 ‘주식 양도용 동의서’, ‘인감도장 날인’ 등 제반 서류 작업을 마쳐야 한다고 다급해 했다. 하는 수 없이 경리과장이 요구하는 주식 양도서와 인감증명서, 그리고 날인해 달라는 곳에 인감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랬더니 다음 날 회사 게시판에 공고가 하나 붙었다. 대표이사 L씨 명의로 ‘이종옥 주간은 주식이 하나도 없으니 즉시 회사를 떠나라’라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속은 것을 알고 몇몇 지인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대응책을 물었다. 그러면서 경리과장에게 사장 어디 있느냐고 다그쳤으나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또 공문은 이미 사장이 떠나기 전 오늘 게시판에 부착할 것을 지시받았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계획적인 술수였다. 필자의 다급한 물음에 상당수 지인들이 ‘원인무효소송’을 하면 주식은 되찾을 수 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면서 비상장주식이라면 송사에 비해 실익이 없다는 부언설명도 잊지 않았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이 같은 상황에 필자는 무엇보다 십 수 년의 친구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했다는 점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완전 맥이 풀렸다. 실익 없는 분쟁에 휩싸이는 것도, 또 이를 감내해야 하는 직원들의 고충도 감안하여 모든 사물을 챙겨 집으로 와 버렸고 더 이상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는 충격에 망연자실, 그냥 드러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이상 신호가 울렸다. 먼저 왼쪽 눈 망막이 망가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혈압도 지극히 정상에서 고혈압으로 한 순간에 나빠져버렸다. 다행히 셋째 매형이 종로에서 안과의원을 하고 있어 매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 이종옥 발행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