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주간지 사주인 회장과 6촌 동생인 사장과 경영 분쟁이 일어나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임직원들에게 밀어닥쳤다. 특히 해운 주간지 핵심 부서인 편집국을 관장하고 있던 편집인 겸 상무이사인 필자의 향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회장이나 사장 어느 한 편에 필자가 선다면 곧바로 승패가 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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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은 자신의 손으로 신입공채기자로 채용, 고위 임원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준 자신의 편에 설 것이다고 확신했다. 사장 역시 십 수 년의 오랜 친구 사이인 자신과 필자간 인간관계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해운 주간지가 온전히 보존되는 방향을 기준으로 행동했다. 우선 편집국 기자들을 다독이며 절대 동요하지 말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할 것을 지시했다. 해운 주간지 발행에 조금의 차질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시에 절대 외부로 이 사실이 퍼지지 않도록 주의주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회장과 사장 모두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회사를 위해 노력해 온 조직원들을 봐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회사 이미지나 경영에 손상을 가져오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용히 분쟁 해결을 촉구했다. 회장에게는 괘씸하고 용서하기 힘들지만 해운 주간지를 위해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사장에게는 6촌 형이고 사주인만큼 억울하더라도 조용히 사표내고 물러날 수 있는 조건을 말하라고 설득했다.
사장은 친구인 필자에게 순순히 그냥 나갈 수는 없다고 누차 얘기한 바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상을 해주면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필자는 양측을 오가며 합의금 도출에 진력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거액을 요구하던 사장은 점차 시간이 흘러가자 최종적으로 당시 유행하던 ‘프로스펙스’ 신발 가게 하나 마련할 수 있는 선에서 양보했다. 7-8천만으로 기억되는데 80년대 중반 이 금액은 요즘 시세로 억 대를 넘는 수준의 거액이었다.
처음에 회장은 펄쩍 뛰면서 반대했으나 사장 역시 그 이하로는 안 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필자가 회장을 지속적으로 설득, 이 금액으로 최종 합의했다. 하지만 당장 현금으로 다 줄 수는 없다는 회장의 지시로 인해, 반은 현금으로 나머지 반은 필자를 비롯한 임원 3명이 지급을 공증하는 조치로 최종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사장은 사직,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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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왕설래의 과정에서도 회장은 은밀하게 후임 사장을 물색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주변의 추천을 받거나 회장의 특기인 고교 및 대학 동기동창들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경영분쟁의 어수선한 해운 주간지를 안정화시킬 만한 인물을 찾지는 못했다.
회장 동창 사이에는 고교 대학 모두 그동안 다수의 동창생들이 해운 주간지 전문 경영인으로 영입되었다가 결국은 좋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한 사연들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회장이 최종 결론을 내린 신임 사장은 필자였다. 상무이사에서 두 단계를 월반,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한 것이다. 동시에 해운 주간지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등재, 그야말로 해운 주간지를 대표하는 자리를 필자에게 맡겼다. 공로주로 주식의 10%를 보유하고 있던 점도 감안되었다.
이때가 1986년 5월 경으로 생각되는데 회사에서 간단하게 취임식을 거행하고 해운 주간지에 공고했다. 이를 본 해운 회사에서 축하 화환과 화분, 그리고 축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회사 정문으로 부터 수 십 미터 이내에 양쪽으로 수 십 개의 축하 화환이 전시되었다. 당시 대형 해운회사였던 한진해운, 현대상선을 비롯해서 동방선박, 극동선박 등 필자와 유대 관계가 깊은 해운 회사들이 대표이사 명의의 화환을 보낸 것이다.
여기에다 해운 관련 협회의 회장 등이나 상근 임원들의 축하 화분과 오랜 기간 친밀했던 해운 경영인들의 축전 등이 필자 책상을 가득 채웠다. 이 광경을 목도한 회장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크게 기뻐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회장 아래 사장인 필자와 영업이사 J씨, 총무이사 K씨의 임원진에다 총 50여 명의 직원이 있는 한국 최초의 해운 주간지에서 사장 임무를 필자는 수행하기 시작했다. 공채 신입기자로 입사, 대표이사 사장으로 오른 실로 의미 깊은 경력이기도 했다. 필자의 해운계 발자취에서 확실히 빛에 합당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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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해 보니 당면해야할 과제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비공식적으로 지출된 회사 공금을 회계 처리하는 과정이 까다로웠다. 회장의 동창으로 회사 고문법인 공인 회계사의 도움으로 대부분 ‘대주주 대여금’으로 처리했다. 문제는 그렇게 하고도 여전히 처리 못한 금액이 상당액에 이르렀다. 여기에다 회장은 필자가 사장에 취임한 후에도 여전히 회사 돈을 매월 엄청난 수준으로 가져갔다. 이를 위해 회장은 총무·경리 부분 실무책임자들에게 자신에게만 보고하고 결재를 맡으라고 은밀히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전임 6촌 동생 사장으로 부터 회장의 수법을 수없이 전해 들어 이를 예상했던 필자는 취임 후 곧바로 경리부장을 호출했다. 그리고는 회장이 가져가는 금액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회장의 지시로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시하는 그를 향해 필자는 “그렇다면 지출한 만큼 당신의 공금 횡령한 것으로 처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경리부장은 혼비백산, 그 이후 회장의 은밀한 지시 내용과 액수를 보고하기를 잊지 않았다.
엄청난 액수도 문제였지만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어떤 근거(예를 들면 영수증 등)도 없이 그저 무조건 가져가는 회장의 무리수를 필자는 그냘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해운 주간지에 장래를 위해서도 이 사태를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오랜 기간 고심 끝에 어느 날 회장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주로서 행하는 일인 만큼 필자가 간섭할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만약 세무당국에서 이를 감지, 조사가 나온다면 회사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감안, 대책을 세워달라고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그런데 대답이 참으로 엉뚱했다. 세무당국이 조사 나온다면 그 때는 돈으로 막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대표이사로서 필자의 몫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너무나 실망한 필자는 이때부터 해운 주간지 사장 자리를 오래 앉아있을 수 없음을 감지했다.
여기에 또 하나 결정적인 변수가 발생했다. 전임 사장인 6촌 동생이 필자에게 자신이 새로운 해운 주간지를 창간할 터이니 도와달라는 주문이었다. 이는 전임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다짐을 받은 사항이기도 했다. 필자가 난색을 표하자 전임 사장은 이번에는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필자 없이는 해운 주간지를 발행할 수 없는 만큼 기존의 해운 주간지 비리 자료를 세무 당국에 송부, 필자가 사장을 맡고 있던 한국 최초의 해운 주간지를 공중분해 시켜버리겠다는 엄포였다.
- 이종옥 발행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