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관료들에게서 자신이 하는 업무에 사명 의식을 가진 경우는 흔치 않다. 그리고 사기업의 임직원들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 이르기 까지 자신의 직위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긍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일컫는 법조인이나 의사들의 경우, 사명의식은 고사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자신의 직업이나 직위를 악용하는 인물들이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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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조선왕조 시대의 상류층이라 불리는 지배 계급층인 양반들, 즉 사대부 출신 선비들은 출세에 눈먼 사람들이 많았다고들 말한다. 틀린 지적이 아니라 과거 급제가 입신양명의 최단코스여서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고자 공부했다. 그리고 관료로 직위가 주어지면 그 순간부터 부와 명예를 뒤쫓아 왔다. 물론 황희 정승 같은 청렴한 고위직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관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속들은 중앙정부이건 지방이건 춘향전의 변 사또와 같은 인물들이었다.

군주 치하의 이 같은 벼슬 선호 현상은 조선조에서 특히 심해서 소위 말하는 당쟁현상으로 이어졌다. 자신들의 입신출세를 막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보복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 왕조의 지배층인 선비들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지상주의자들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또 체면치레의 외형적 가치관에 몰입한다고들 비판하는 역사학자들도 많았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 조선왕조의 선비들을 저평가한 이의 확산을 위한 식민 사관에 영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친일파 학자들의 입에서 특히 조선왕조 선비들 비난 발언이 결정적으로 선비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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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되던 때가 당파 싸움이 가장 심했던 시기 중 하나였다. 남인의 지원을 등에 업은 장희빈이 왕비에 까지 오르자 남인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장희빈이 폐위되고 사약까지 받은 반면 인현왕후가 다시 복위되자 인현왕후의 배경이었던 서인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몰락한 남인의 처벌을 두고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했다. 그리고 숙종 다음 경종이 등극하자 소론이 득세한 반면, 노론은 크게 밀렸다. 그러다 병약한 경종이 일찍 승하,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노론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에 소론의 강경파들이 경종 독살설과 영조의 정통성 부족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인좌의 난까지 일어났다. 이렇게 선비들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치고받고 온갖 추악한 당쟁을 야기하다보니 조선왕조가 당파 싸움으로 날을 지새웠다는 식민 사관이 후대에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조선 선비들의 한 단면만 본 것에 불과했다. 상당수의 선비들이 이런 당파싸움에 전혀 휩쓸리지 않고 선비다운 기개와 학자다운 자세를 보였다. 그 대표적인 선비가 지난 번 이인좌의 난에 관한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황고 신수이 선생이다.

황고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의 성취 속도가 남달랐다. 특히 소학에 통달, 어른 선비들을 강해 할 정도였다. 그래서 ‘소학동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당연히 과거에 응시하면 대과 급제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에 깊은 영향을 받아 일생 초야에 묻혀 지내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자신의 5대조 요수 선생의 영향에다 당시 조정 선비들의 당파 싸움을 보고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반면 초야에서 독자적으로 유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교육하는 일이야 말로 하늘이 주신 천직으로 간주했다. 일생 명리를 멀리한 참 선비였다. 이런 연유로 황고 선생 역시 요수 선생과 같은 시각을 유지했다.

요수 선생도 덕행이 탁월했지만 황고 선생은 안의현 지방관속, 예를 들어 안의 현감이나 경상 감사, 심지어 암행어사들까지 황고 선생의 학문과 덕망에 감탄, 시시때때로 왕에게 황고 선생 등용을 천거했다. 무엇보다 황고 선생은 부모에 대한 효가 특별했다. 여기에 주위의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에게까지 인정을 베풀었다. 그러면서도 강직하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사람을 아끼는 애민 정신이 투철, 이인좌의 난에 멋모르고 가담한 자를 석방하도록 주장, 이를 실현시키는 한편 삼족을 멸하는 역적죄의 연좌제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한 유명한 사례가 있다.

또 황고 선생은 조선왕조 당파싸움이 가장 심했던 숙종-경종-영조 시대를 살아온 선비였다. 당파 싸움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아예 벼슬길 자체를 멀리한 것이다. 부귀영화를 최우선하던 대다수의 조선왕조 선비들과는 결이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일제 제국주의자들의 식민 사관 영향으로 참 선비인 황고 선생에 대한 후대의 조명은 아주 미약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밤낮 붕당으로 날을 지세우며 보냈다는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이로 인해 일제 강점기 교육을 받은 일부 학자들이 기회만 주어지면 조선왕조 선비들의 당파 싸움을 지적하고 조선왕조 유학자들의 올곧은 선비 정신을 폄하,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요수 선생이나 황고 선생처럼 학문을 연마하고 적행을 실천하는 것을 하늘이 주는 직위로 간주하며 일생 초야에서 올바른 선비 정신을 실천한 언행일치의 참 선비들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21세기에 들어 우리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선두 국가 반열에 오른 역사적 배경이 바로 선비다운 선비들의 올바른 선비 정신 때문임을 깨달아 알아야 하겠다. 그야말로 조상들이 물려준 맑고 밝은 정신세계야 말로 우리의 가장 큰 재산임을 인식해야 하겠다.

- 이종옥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