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무역운송 편집인으로 근무한지 3년째 되던 1991년 초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때 서인곤 발행인 사장은 항공회사 광고 70% , 해운회사 광고 30% 비중으로 회사를 이끌어 갔다. 그런데 항공 관련 월간지가 등록되어 발간됨으로써 항공 분야 광고가 상당 부분 감소해 버렸다.
신입기자 2명으로 감당
사무실 이전과 더불어 편집국 소속 기자 모두를 내보내고 신입 여기자, 그것도 전문대 졸업 여기자로 채워 인건비 지출을 최소화 시켰다. 영업은 자신의 후배 한 명을 파트 타임 직원으로 채용, 그야말로 축소 경영에 돌입했다. 한편으로는 인맥을 동원, 마침내 어느 공기업 사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서인곤 사장은 월간지를 필자에게 넘겨주었다.
필자는 우선 월간을 격주간으로 바꾼 후 다시 주간 신문으로 변경,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다. 사실 92년부터 2년 여 격주간 시절은 항상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주간 신문으로 전환한 뒤 기자들을 비롯해서 직원을 대폭 보강했는데, 그 이후부터 계속 적자를 내게 되었다. 편집국만 해도 윤종희 부장, 백종숙 기자, 영업부 이승훈 과장 등 간부급이 많아 인건비 부담이 엄청났다. 필자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우선 은행으로 부터 차입,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한편, 주 3회 병원 신세를 지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동분서주 광고 유치에 나섰다. 여기에 아내인 한승화 부장에게 편집 업무와 회사 관리 및 경리 업무를 맡겼다. 또 큰 딸을 잠시 기자로 근무시키기도 했다.
이런 시절 필자는 그동안 교류해 왔던 해운인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필자의 어려움에 조금의 주저도 없이 도와주는 분으로 신태범 회장, 이용기 회장, 배주원 회장과 박광훈 사장을 들 수 있다. 또 평전 집필이 계기가 되어 교류하며 존경과 신뢰를 보내었던 분으로 왕상은 회장이 있었다.
왕상은 회장은 백세에 가까운 연세로 아직까지 생존해 계신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신태범 회장은 이미 구순을 넘겼으나 여전히 현역이시다. 이용기 회장도 현역이고 이 두 분과는 지금까지도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은퇴한 배주원 회장과도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아드님과 손자∙손녀를 만나고 와서 필자에게 안부 전화를 하기도 했다.
신태범 회장이 지금도 필자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지난 해 연말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 수 있겠다. 지난 연말 오후 즈음에 신 회장을 뵙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오전 11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점심을 같이 하자며 빨리 회사로 오라고 재촉하시는 게 아닌가. 가보니 그날은 신 회장의 해양대 2기 동기생들의 점심 식사 자리였는데 이 자리에 필자를 부른 것이다. 2기생 중에는 해운공사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필자의 고교 대 선배인 박재혁 전 동남아해운 부사장도 오셔서 서먹한 느낌은 없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좋은 만남과 안부를 주고받는 해운인들 못지않게 지금은 타계하고 안 계셔서 만나보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해운인들도 수 없이 많다. 또 확인해 보니 생존해 계시기는 하지만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늘 지니고 있는 분들도 있다.
은퇴한 분으로 생존해 계셔서 한 번은 만나보고 싶은 해운인으로는 전 FEFC 김성응 대표를 비롯해서 해공 업무과장과 남성해운 상무를 거쳐 남성해상을 창업했던 지홍식 회장도 보고 싶은 해운인 중 한 사람이다. 또 대학과 ROTC 선배로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전 동방선박 상무 및 선진해운항공 전무와 미국 주재원을 지낸 최기석 전무도 참으로 보고 싶은 분이다.
타계해서 만나볼 수는 없지만 늘 가슴 속에 그리움을 담고 있는 해운인들도 있다. 에버렛기선 총 지배인을 지낸 전 APL 한국 대표였던 이동혁 사장, 동방선박 김원창 사장, 소양해운의 최경규 회장, 고려종합운수 나흥진 회장, 두양상선 조상욱 회장 등이 생각난다.
한편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필자에게 이모저모로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해운 주간지 발행인이 되어 찾아갔을 때 매정하다 못해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외면했던 몇 사람 해운인이 있었다.
A모 사장과 C모 사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A사장은 모 해운회사 포워딩 담당 부장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다. 또 창립 초기 해운 주간지 광고 게재 및 광고료 DC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르자 이번에는 회사를 인수할 사람을 알아봐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자 필자를 붙잡고 온갖 하소연을 다 했을 때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다 받아 준 바 있었다. 그리고 좀 더 힘을 내어 이 고비만 넘기면 좋아질 것이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어려움을 견딘 A사장은 몇 년 후 회사가 번창, 포워딩 뿐 아니라 대리점 업무까지 취급하는 견실한 회사로 성장했다.
마침 그 때가 필자가 독자적 해운 주간지 경영을 시작했을 때여서 찾아갔다.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제의했으나 굳이 오후 1시 이후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대낮임에도 술에 취해 얼굴이 벌건 채 필자를 만나는 실례를 범했다. 그리고는 미처 광고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찾아오는 해운 주간지 사장들이 많아 힘들다며 이들에 대한 자신의 대처법을 광고 대신 계좌 번호를 받아 20만원 씩 송금해 준 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못 박는다며 필자에게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싶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무런 대꾸 없이 나온 후로 두 번 다시 A사장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후 A사장의 회사는 문을 닫았다.
C모 사장과의 사연은 워낙 희한한 일이 많아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이번 회고록은 일단 이번 회로 마감하고자 한다.
- 이종옥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