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운 칼럼] 잘 사는 해운인이란?

취재부
2021-12-14
이 시대 한국에서 그다지 많지 않은 참된 목회자 중 김동호 목사라는 분이 있다. 필자보다 3살 아래인데 이 분이 설교에서 자주하는 언급 중 하나가 잘 사는 것과 부자로 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들 ‘잘 산다’라고 말하면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경우를 뜻하지만 부자로 사는 것이 반드시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빈하게 산다는 것도 모두 잘 사는 것은 아니라고 김 목사는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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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동감한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따라서 부자로 지내면서 잘 살 수도 있고 청빈하게 삶을 영위하면서도 잘 살 수 있다. 같은 이치로 부자면서도 못 살고 가난하면서도 잘 못사는 사람도 많다. 
그러면 해운인으로서 잘 사는 모습은 어떤 형태일까? 다시 말해 해운인으로서 인간다운 해운 인생을 나타내면서 살아가는 삶은 어떤 것일까? 먼저 잘 사는 해운인은 언행이나 가치관이 추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욕심이 과하지 않아야 한다. 과욕을 부리는 해운인치고 잘 사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능력이 있어 선박운항업을 지속적으로 흑자 행진을 지속하다가도 선대 확보에 과다한 욕심을 부려 대단위 용선과 대선을 시도하다 도산한 해운인이 한 둘이 아니었다.
특히 해운업을 경영하면서 그동안 적지 않은 부를 축적한 해운인이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임직원들에게는 그야말로 낮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 장기근속자가 없어 매번 새로운 인력을 보충해야하는 구두쇠 경영을 하는 해운인 역시 잘 못사는 해운인이다. 회사가 적자에 시달리다 못해 저임금을 줄 수밖에 없는 경우는 결코 못사는 해운인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좀 더 많은 돈을 가져가기 위해 수전노 노릇을 하는 욕심 많은 해운인은 잘 못하는 해운인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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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잘 못사는 해운인의 유형은 자신이 가장 똑똑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교만한 해운인이 해당된다. 또한 베풀면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타인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와주고 격려하면서 살아가는 해운인이 잘 사는 해운인이다.
그리고 재산 형성에 과도한 욕망을 지녀 무엇보다 물질 만능주의에 매몰되어 자신보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한 없이 친절하지만 자기보다 부의 정도가 낮다고 생각하면 무시하고 깔보는 해운인이 있었다. 모든 척도를 부의 정도에 두고 자신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만 가까이 하는 유형이다. 논어에서 지적하는 ‘소인배’ 같은 해운인이 더러 있었다. 지금은 물론 타계하고 없지만 말이다.
지나치게 명예욕이 많아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사는 해운인도 잘 못사는 해운인 중 하나이다. 정치인에게 알게 모르게 후원금을 주면서 어디 명예직이라도 정당의 자리 하나를 부여받으려고 찾아다니는 해운인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해운인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에다 해운업이 아닌, 부동산 투기나 증권 투기 등 비해운적 영역에 눈을 돌려 활동하는 해운인 역시 잘 못사는 경우이다. 따라서 그저 해운업 하나에 모든 것을 다해 집중하는 해운인이 잘 사는 해운인이다.
특히 윤리 경영을 실현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 해운인이 잘 사는 해운인이다. 우리의 외항해운사를 보면 분식회계 등 비윤리적 경영으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다 도산, 수많은 임직원들의 삶의 터전까지 송두리째 망가지게 한 해운인이 있었다. 가장 잘 못산 해운인이라 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영하던 해운 회사는 도산시키면서 개인적인 손해는 감수하지 않은 해운인도 있었다.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잘 못산 해운인의 전횡이라 하겠다.
해운인의 삶이 다른 해운인으로부터 잘 살았다고 인정받은 일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해운인으로서의 능력보다는 인품이 어떠했는가가 관건이 된다. 무엇보다 다른 해운인, 설사 자신이 데리고 있는 수하의 해운인이라도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행을 유지했다면 잘 산 해운인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난폭한 언어나 사용하고 자기의 위치를 이용, 과시하기를 즐겨하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면서 지극히 이기주의적 처신으로 일관하면 분명 잘 못산 해운인이다.
그래서 해운계를 떠난 뒤 “그 친구 잘 떠났다.”고 말하는 해운인이 있다면 그 또한 분명 잘 못산 해운인의 전형이라 하겠다. 수학 공식처럼 잘 살고 못 사는 수치가 있는 바는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잘 사는 하나의 척도가 있다. 바로 타인을 배려하면서 살았다면 잘 살아온, 잘 사는 해운인임이 틀림없다.
타 해운인이 고통을 당하는 만큼 또 다른 해운인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동정심이나 염려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냉혈한 같은 해운인 역시 잘 못사는 해운인이다. 가정이든 회사이든 국가이든 공동체내에서 자신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하면서 다른 사람도 돌볼 줄 아는 해운인이야말로 잘 사는 해운인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다지 길지 않은 인생, 특히 해운 인생을 영위하면서 잘 산 해운인으로 기억되고 평가받는 해운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해운인들이 모두 보여주면 우리 해운계는 한결 나아진 모습이 되리라 확신한다.

- 이종옥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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