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계에 오래 몸담고 있는 해운기업 CEO나 고위 임원 등 해운 경영인들은 한결같이 부드럽고 친절하다. 무엇보다 고객인 하주들을 오래 상대해서 인지 언어 구사가 그야말로 매끄럽기 짝이 없다. 대다수의 해운 경영인들은 이 같은 겉모습 뿐 아니라 내면의 세계도 유연하고 융통성이 풍부하다.
하지만 아주 적은 숫자이기는 하나 표리부동, 즉 속마음을 숨긴 채 외부적으로만 품격 있는 언어구사를 하는 해운 경영인도 있다. 오늘은 필자가 실제 당한 두 가지 사례를 언급해 볼 까 한다. 주로 필자가 무언가 부탁 내지 도움을 청했을 때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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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은퇴한 W해운의 K사장이라는 해운 경영인이 있었다. 해운 당국의 고위직 출신으로 어느 해운 단체의 상근 대표를 맡고 있을 때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잘 알고 있던 해운인이었다. W해운 CEO로 변신한 지 오래된 시점에서 필자가 발행인으로 있는 해운 주간지 광고 게재를 부탁하기 위해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동안 전혀 접하지 못한 K사장의 선을 넘는 언어구사를 당하고 말았다. 누구나 상대와 대화를 할 때는 상대가 기분 나쁘거나 모욕감을 느끼는 언어구사는 금물이다. 그런데 K사장은 필자에게 “1세대 해운 기자로 H해운 주간지 발행인 등 적지 않은 해운 매체 발행인들을 양성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왜 H주간지보다 뒤쳐지는 해운지를 발간하고 계시느냐?”는 힐난성 질문을 던져와 첨으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상당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래서 별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동안 밝히지 않았던 필자의 희귀난치병의 일종인 만성질환, 즉 주 3회 혈액투석의 사실을 토로했다. 물론 이같이 밝히는 이유를 어느 해운 경영인이 한국 최초의 해운기사라고 얘기하면서 왜 그 정도의 해운 주간지를 발행하고 있느냐고 지적한 데에 대한 답변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주 3회 침대에 올라가 치료 시간만 4시간, 준비하고 오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반나절을 병원에서 지내야 하고 그런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처지임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런 핸디캡을 안고 해운 주간지를 경영하다보니 경쟁 해운지 발행인들보다 일주일에 3분의 2 이상의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선두 해운 주간지로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면서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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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간혹 필자의 만성질환에 대해 숨기지 않고 밝히는 칼럼을 게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필자는 해운 주간지 경영자이면서 누구에게 광고 게재 부탁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두 가지 경우에 자존심을 누르고 하게 되는데, 하나는 주간지 경영이 너무 다급해서 체면 불구하고 부탁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이다. 또 하나는 해운 경영인으로 부터 먼저 그 같은 부탁을 하도록 유도하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K사장은 바로 후자에 속했다. K사장은 IMF시절 국내 해운당국의 외항과장으로 재직했으며 국내 어느 해운 매체 발행인이 찾아와 해운 기업의 광고 게재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광고 게재가 가능한 해운 회사 사장들에게 전화, 그 해운 매체가 IMF 고비를 넘기도록 조치했다며 자랑 삼아 얘기하기에 K사장에게 광고 지원을 부탁한 것이다.
그러자 K사장은 그동안 숨겨왔던 본색을 드러내면서 필자에게 선을 넘는 언어구사를 서슴지 않는 것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K사장은 퇴직했으나 얼마 뒤 아들 결혼식 청첩장은 보내왔기에 참석, 축의금을 전하고 식사는 하지 않은 채 돌아온 기억이 있다.
또 이런 일도 당했다. 십 수 년 전 D선박의 K전무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D선박 K사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터라 K전무 역시 필자에게 늘 깍듯하게 대해주었다. 부드럽고 친절한 언어구사는 기본이었다. 그런데 IMF 직후 필자의 해운 주간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K전무가 결정권자인 어느 라인의 광고 게재를 부탁하기 위해 찾아간 것이다. 필자가 용건을 말하자 K전무는 곧바로 필자에게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갑의 위치이고 필자는 을이라는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K전무는 평이사 시절 ‘과장급 이사’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던 해운인이었다. 당시 리베이트가 성행했던 시절이었는데 D선박 과장급이 담당했던 리베이트 전담을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K이사 부서의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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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경영인들의 언어구사 능력은 질과 양 측면에서 하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달변으로 어떤 상대에 대해서도 설득이 가능할 만큼 논리정연하다. 더불어 아주 친절하고 호감을 느낄 만큼 온갖 그럴듯한 어휘를 주저없이 구사하기를 즐겨한다.
실제 인품에도 유연하고 온유함을 지닌 해운 경영인들이 수도 없이 많다. 원래 태생은 거칠거나 터프해도 오랜 해운인 생활을 통해 그런 바람직한 기질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교만하거나 자기 과시가 강한 해운 경영인은 자신이 갑의 위치에 놓여 있다고 판단되면 K사장이나 K전무처럼 상대가 설사 해운 주간지 발행인이라 하더라도 거침없이 선을 넘는 언어구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반세기 가까운 해운 매체 생활 속에서 많지는 않지만 간혹 K사장이나 K전무 같은 해운 경영인을 만날 때가 있었다. 유일한 해운 취재 기자 시절인 20세기에는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다만 90년대 이후 해운 주간지 경영자가 된 뒤 몇 차례 당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K사장이나 K전무처럼 평소 그렇게 깍듯하게 대하던 해운 경영인이 한 순간에 돌변, 희한한 언어구사력을 발휘할 때면 배신감을 넘어 모욕감까지 느끼곤 했다.
해운계에도 수많은 해운 기업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수많은 해운 경영인들이 활동하고 있어 천태만상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했던 아픈 기억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포장하고 살아가면서 마음과 다른 언어 구사에 익숙해 있고 해운 경영인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려서 부터 필자는 모친으로 부터 품격 있는 언어 구사의 집중적 교육을 받았다. 가장 자주 들었던 어휘가 “말이 씨가 된다.”였다. 누추한 말이나 험한 말을 하면 그것이 자라서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려도 그렇게 귀결됨이 인간 세상이치라는 지론을 지니고 계셨다.
성경에도 “말의 실수가 없는 자가 온전(완전)한 자”라는 구절이 있다. 해운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구사는 인간관계를 따스하게 만든다. 반면 앞서 소개한 K사장이나 K전무처럼 누구를 낮추면 자신이 올라간다는 식의 어휘구사는 교만함의 발로이기도 하다. 특히 그동안 어렵게 대하던 상대가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어리석음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 같은 언어구사는 삼가야 한다. 특히 고객을 상대하는 해운업에 종사하는 해운인으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 이종옥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