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운 칼럼] 시인 해운인과 해운 기자(1)

취재부
2021-10-05

사람은 누구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고비가 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해운기자 생활 10년, 그리고 나머지 39년을 해운 주간지 편집국장 또는 발행인으로 지낸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의 경험이 있다.

한번은 공채 해운기자로 근무한지 1개월 만에 사직을 하려 했던 일이다. 또 한 번은 2010년 해운 주간지 발행인으로 지치고 힘들었던 때이다. 이 고비를 넘긴 결정적 계기를 제공해 준 해운 경영인들이 있다. 한 분은 주요한 회장이고, 또 한 분은 이용기 회장이다. 두 분은 해운인이자 시인으로 시를 발표한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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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공채 해운기자가 된 이유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ROTC 장교 전역자들만 채용하는 대기업 입사 기회가 활짝 열려있음에는 해운 주간지를 택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해운 주간지에 입사해보니 글쓰기 위한 취재나 원고 작성 시간보다 자료 수집(입·출항 스케줄)과 작성, 그리고 교정 업무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광고면 은 옵셋트 인쇄를, 그리고 기사면은 활판 인쇄를 했었다.

월요일은 하루 종일 스케줄 수집하는 날이었다. 물론 필자는 틈틈이 취재도 병행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화요일은 스케줄 작성 작업, 그리고 금요일은 기사면 교정을 위해 하루 종일 활판 인쇄소에서 저녁 늦게까지 지내게 되었다. 먼저 광고면 입·출항 스케줄을 작성하는 해운 회사 담당자들은 90%가 고참 여직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0%가 신입 남자 직원들이었다.

그래서 해운회사 CEO나 간부들을 인터뷰하는 해운기자로서는 이들 스케줄 작성자에게 수거해 오는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다. 필자의 경우, 스케줄 작성자의 상사(임원 또는 부장)에게 미리 당부를 해서 두 번 찾아가는 번거로움을 사전에 방지했다. 하지만 간혹 멋모르는 남자 사원의 경우, 자신이 갑이고 필자는 을인양 대처하는 일이 있어 기분이 늘 상하곤 했다.

게다가 이 광고면의 교정까지 해운 기자 몫이었다. 금요일 하루 종일이 활판인쇄 교정도 모자라 수요일이나 목요일 저녁 늦게 옵셋트 인쇄소에서 교정은 물론 수정 작업까지 해운 기사가 해야 하는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침내 사직하려고 결심했는데 이를 눈치 챈 발행인이 광고면 수정작업은 해운 기자에게 부담시키지 않는 조치를 취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여전히 기사 취재나 작성보다 다른 업무에 시간이 더 할애되어야 하는 현실이 영 마땅치 않았다. 이런 상황을 일거에 역전시켜준 해운 경영인이 바로 주요한 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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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 회장을 처음 만난 시기는 1973년 11월이었다. 해운 주간지 유일한 취재기사로서 해운 관련 주요 기관 및 단체장 신년사를 청탁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단체장 대신 담당자를 만나 청탁서를 전달하고 원고를 수거했다. 원고 작성 역시 이들 담당자들이 대필하는 형태였다. 예를 들어 교통부 김신 장관의 원고를 해운국 최훈 사무관(후에 해운국장과 한진해운 부사장 역임)에게 선박대리점협회 회장이자 천우사 사장이었던 전택보 회장은 천우사 심항섭 부장에게 전달하고 받아야 했다.

그런데 당시 국내 최대 해운 회사인 대한해운공사의 사장이자 한국선주협회 회장인 주요한 회장만은 달랐다.

해운공사 사장 비서실의 비서실장에게 원고 청탁서를 내밀고 돌아가려는데 잠깐 기다려달라고 실장을 말한 뒤 주 사장에게 들어가더니 곧바로 나와 필자를 주 사장에게로 안내했다.

그리고 청탁서를 직접 주요한 회장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신년사 원고 수거도 필자가 주 회장으로 부터 직접 받았다. 순 한글로 이루어진 원고였고 주 회장이 직접 작성한 친필이었다. 상당한 감동이 밀려왔다. 한국 해운계에도 이런 해운인이 있었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해운 기자로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활력소를 갖게 되었다.

주요한 회장은 1900년 평양에서 출생, 목사인 부친의 일본 선교 활동시 일본 최고 명문인 동경의 제1고보를 졸업했다. 상해에서 대학을 다녔고 귀국 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19년 김동인과 순수 문예시 ‘창조’를 발간했으며 한국 최초의 자유시인 ‘불놀이’의 저자로 문인으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또 제 4대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과 부흥부 장관을 역임한 후 1968년 민영화된 대한해운공사의 초대 사장으로 부임, 해운인으로 변신한 바 있다.

주요한 회장이 시인으로 1924년 발표한 시집 ‘아름다운 새벽’에 실린 시이다.

 


빗소리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 이종옥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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