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항로 국적선사들 장수요인 참고해야

취재부
2017-08-29
지난 45년 동안 해운업계를 지켜 본 해운기자로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한일항로나 한-동남아 항로 같은 근거리 원양 정기 항로 취항 운항사들의 기업 생명력이 유난히 길었다는 점이다. 특히 가장 최단 거리 노선인 한일항로 취항 국적선사들의 수명이 길었다. 
반면 유럽 항로 같은 원거리 원양정기항로 취항 국적선사들 수명은 비교적 짧았다. 여기에다 부정기 운항 대형 국적선사들은 해운업계를 이끌어가던 대형 부정기 운항사 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국적선사는 하나로 없을 정도이다.
특히 한일항로 취항 국적선사들로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국적선사로는 고려해운, 천경해운, 남성해운, 태영상선, 흥아해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근거리 정기항로, 특히 한일 정기항로 취항 선사들이 장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한일 정기항로가 한국 정기선 운항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이다. 1950년부터 협성선박, 근해상선, 동남해운, 대한해운공사 등 국내 정기항로 국적선사들 모두가 한일항로 취항을 시작으로 운항사업의 영역을 넓혀갔다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정기항로 중 한일 항로 취항 국적선사들의 역사와 전통이 가장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또 일본이라는 경제 대국에 취항한 강점에다 60년대 후반 한국에도 해상운송의 컨테이너 바람이 불면서 한일항로는 특별한 노선으로 부각하게 되었다.
즉 1976년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터미널인 BCTOC가 개장되기 전까지 한국 어떤 항만에도 대형 풀 컨테이너선이 접안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외국의 대형 정기 풀 컨선들은 일본의 고베항이나 오사카항 등에 입항한 뒤 한국의 소형 컨테이너 피더선에 의해 운송되어 온 컨테이너를 환적, 북미나 유럽 등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형태를 취했다.
따라서 한일항로 취항 컨테이너 피더 운항 국적선사들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고려해운, 남성해운, 흥아해운 등이 대표적인 한일 노선 컨테이너 : 피더선 운항사였다.
또 한일항로 취항 컨테이너선 운항 국적선사들은 굴지의 외국선사들이 한국 영업을 현지법인화하기 전까지 이들의 한국GSA를 맡아 높은 수익성을 유지했었다. 예를 들어 고려해운은 일본 NYK의 한국GSA이기도 했다. 또 흥아해운은 일본 Japan Line의 한국GSA였다. 천경해운도 다수의 외국선사 한국 대리점 업무를 취급했었다.
이러한 한일항로 취항 국적선사들은 비교적 안정된 기반 하에 성장을 해왔고 또 하나 결정적인 요인은 80년대 중반에 단행된 해운합리화 조치시 예외적 특별 혜택을 입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적선사 통폐합 조치는 양적 기준, 즉 보유 톤수를 기준으로 통폐합이 이루어져 한일항로 취항 국적선사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일항로 취항 국적선사들이 똘똘 뭉쳐 중소기업 보호차원에서 한일항로 취항 국적선사들은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또 하나 한일항로 취항 국적선들은 대형 원양 정기 국적선사들처럼 해운 불황의 위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운임 풀제 등 각종 조치를 시행, 생존 전략이 효율성을 발휘해 왔음이 또 하나 결정적 요인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한일항로에는 대형 외국선사들의 운항이 제한적이었다. 물론 원양항로 취항 외국선사들이 한일간 운송 화물도 집화했지만 오랜 기간 한일항로만 전문적으로 운항해 온 국적선사들의 단합된 카고 세일즈 전략을 완전 제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일 항로에서 기반을 구축한 대다수의 국적 운항사들이 한-동남아 항로에도 진출, 중견선사로 성장한 것도 장수의 또 하나 비결이라고 생각된다. 고려해운이나 흥아해운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반면 한일항로 취항에만 국한, 영역을 넓히지 못한 국적선사들은 성장가도를 달리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답답함도 보여주었다.
이 같은 한일 취항 국적 정기선사들의 생존 수명이 길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향후 한국 국적선사들의 성장∙발전 가도의 큰 참고가 되리라 확신한다. 동시에 또 다른 국적운항사들에게 양보다는 질을 우선해야 장수할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보여준 실제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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