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 여사의 회고록이 논란이 된 바 있다. 또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은 대선 가도의 뜨거운 이슈가 되어 대통령 후보자간 치열한 논쟁을 야기하기도 했었다. 몇 년 전에는 MB의 회고록 또한 내용의 진위 여부에 따른 진실공방이 전개되기도 했다.
1
그런데 이들 책자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의 시각 하에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기술한 자서전 형태의 회고록이라는 특징이 있다. 물론 자신이 직접 기술하기보다 문장력을 갖춘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정치인 등 유명 인사는 물론이고 기업인들도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곤 한다. 재미있는 바는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강조하기 위해 정치인들은 자서전(자전)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기업인들은 자전보다는 객관적 시각 하에 기술한 평전을 선호하는 흐름이 있다.
물론 기업인도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자전을 선호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호암(이 회장의 호) 자전’이다. 이 호암 자전은 필자 가족과도 연관성이 있다.
필자의 맏형인 이종무 전 중앙일보·소년중앙 초대 주간과 여성중앙 주간이 바로 호암 자전을 기술한 작가였기 때문이다. 이종무 주간은 중앙일보를 정년퇴직한 뒤 정신문화연구원의 실장으로 재직하다 역시 퇴직, 일본의 어느 신문사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하다 이병철 회장의 부름을 받았다.
이병철 회장은 자전 발간을 결심하고 중앙일보 등 언론계와 국내 문학계의 내놓으라하는 글쟁이들을 십 수 명 인터뷰해 보고 저술한 책자나 자료들을 읽어 보았으나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고심하던 차 누군가 이종무 주간을 추천했다고 한다.
1924년생인 이종무 주간은 경북중(오늘의 중·고교)과 서울대 법대를 나온 뒤 합동통신을 거쳐 중앙일보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또 이병철 회장의 특명으로 일본에서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언론인들의 행적을 오랫동안 조사한 적이 있어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큰 신임을 얻었던 경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종무 주간은 일제 강점기 학창시절을 보내 일본어가 일본인보다 더 유창했다.
특히 일본어 문장은 일본인 작가들보다 더 품위 있고 고급스러워 일본의 어느 일간 전문지가 엄청난 고료를 주면서 이종무 주간의 원고(일본어)를 받아가곤 했었다. 이 주간이 바쁘다며 거절했더니 일본 주간지 회사 발행인이 직접 방한, 이종무 주간을 설득하던 일을 필자는 잘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어 문장은 물론이고 한글 문장력이 특출한 이종무 주간을 잘 알던 이병철 회장은 현역에서 은퇴, 쉬고 있는 맏형을 설득, 회장 집무실 옆에 여직원 한 명이 딸린 집필실을 마련한 뒤 자전을 집필하게 만들었다. 80년대 초반의 일로 당시 태평로의 삼성빌딩에 위치한 맏형 사무실을 필자 또한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2
이처럼 필자는 젊은 시절부터 맏형의 집필 활동을 지켜보면서 우리 해운계의 기록 문화 부재 현상을 아쉬워하던 중 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 해운인 평전 작업을 개시했다. 이에 따른 결과물도 지금까지 단행본 5권을 포함, 총 50여 명의 원로급 해운인들의 발자취를 오로지 평전 형태로만 기술한 바 있다.
처음에는 주로 신문 연재 형태로 기술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주인공이 김윤석 천경해운 창업자였다. 두 번째는 동서해운(후에 동남아해운) 창업자 양재원 회장이었다. 이런 신문 연재 형태로 기술한 ‘해운인 평전’ 대상자는 총 50여 명에 달했다.
주요 해운인들을 소개해 보면, 왕상은 협성·범주해운 창업자(후에 단행본으로도 발간), 윤종근 흥아해운 창업자, 이맹기 대한해운 창업자, 신태범 현 KCTC 회장, 배주원 아신해운 창업자, 조상욱 두양상선 창업자 등이 생각난다. 그러다 2000년대 초 어느 해운 경영인의 발자취를 평전 형태로 신문 연재를 시작했었다.
연재가 끝나면 단행본으로 발간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연재가 거의 마무리 되어갈 무렵, 돌연 그 해운인은 자신이 직접 집필, 자서전 형태의 단행본으로 발간하겠노라고 말했다. 얼마 후 정말로 단행본 형식의 자서전이 발간되었다.
책을 한 권 보내왔기에 첫 장을 읽어보았는데, 필자는 경악을 하고 말았다. 필자가 신문 연재로 하기 앞서 “연재를 시작하면서”라고 발문을 개시한 바 있었는데, 이 글은 필자가 그 해운인 자전의 발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인사말로 둔갑해 있었다. 물론 사전에 필자의 허락을 받은 바 없었다.
더욱 기가 막힌 바는 본문의 내용이었다. 필자가 “OO 회장은…”이라고 기술한 문장을 “내가…”라고만 변경한 뒤, 자신이 기술한 것으로 완전히 둔갑시켰다. 처음에는 저작권 위배로 문제를 제기하려 했으나 주변에서 말렸다. 절차만 복잡하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면 그냥 넘어가자고 건의해 왔다.
이 의견을 받아들여 더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다만 그 해운인과는 그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연락하지 않고 교류를 단절해 버렸다. 이후 어떤 해운인의 발자취도 신문 연재 형태의 기록으로는 남기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해운인의 자전에는 갖가지 하자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부친이 문인이어서 문장력을 이어받은 박광현 현 제일항역 회장의 자전 단행본만은 필자가 읽어본 결과 진솔하고도 체계적으로 자신의 일생이 잘 기술되어 있었다.
반면 또 다른 어느 해운인의 자전은 자신이 3대 대주주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한 해운기업을 마치 자신이 단독으로 창업한 양 잘못 기술, 하자 투성이의 자전으로 전락시켰다.
이 밖에도 자전의 공통적 허점으로는 연도 같은 숫자의 기술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4.19나 5.16이 발발한 연도를 착각,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일이다. 이런 형태의 자전은 후일 기록물로 누구에 의해 인용될 때 또 다른 오기를 불러일으킨다. 연도 같은 오기는 후일 잘못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만, 자신의 발자취를 오도하거나 견해를 실제 보다 과장 또는 왜곡 시켰을 경우, 이를 수정할 길이 없게 된다.
- 이종옥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