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TC 신태범 회장
인간관계의 성숙도를 가름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가 바로 일관성이다. 특히 오랜 기간 교분을 계속해 오면서 시종일관 동일한 자세를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처신을 달라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운 경영인과 해운기자 사이가 일관성 유지가 어려운 인간관계 중 하나이다. 그것은 해운 경영인이란 이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해운기업을 이끌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운 경영인 입장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해운기자와 오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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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신의 유익이나 유불리에 관계없이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해운 경영인들도 있기 마련이다. 현역 해운 경영인으로 이 같은 인간관계의 바람직한 기조를 유지해 온 세 분의 해운 경영인들이 있다. 바로 1세대 해운인으로 1920년생이신 협성(범주)해운 창업자 왕상은 회장이다.
십 수 년 전 필자는 매주 왕상은 회장을 2시간 씩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오전 10시에 만나 12시까지 출생에서 부터 그때까지 살아온 세월 동안 겪은 모든 사연들을 듣기 위해서 였다. 이 같은 세월을 4년 여 동안 지속한 끝에 "초계 왕상은 평전" 원고를 달고 한 적이 있었다.
2시간 씩 하기로 사전에 정했지만 대부분 12시를 훌쩍 넘긴 오후 1시 가까운 시간에 마쳤다. 그래서 왕 회장은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필자와 점심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선 왕 회장이 아주 따스한 인정의 성품을 지닌 분임을 여실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범주해운 인근 일식집, 한식 식당 등을 주로 다녔으나 나중에는 인근 호텔의 일식 식당에 자주 가게 되었다. 그리고 식사 후 차도 한 잔 하면서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다. 이 때 그야말로 왕 회장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우선 왕 회장은 회사에 결정적 손해를 끼치거나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절대 먼저 어떤 임직원에게도 사표를 강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950년 창업 이래 반세기를 훌쩍 넘긴 기간 동안 이 원칙을 항상 고수한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경영 기조이다. 조직원들에 대한 인정이 깔려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해운 경영인, 특히 해운기업 창업자들 중에는 조금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언행을 하면 곧바로 사표를 받는 해운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한 명의 직원을 내모는 일에 국한되지 않았다. 가정의 가장일 경우, 일가족의 생존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자칫 강제 퇴직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몰린다면 강제 퇴직은 조금 심하게 말해서 일가족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퇴직 후 새로운 직업을 구하지 못하거나 섣불리 자영업을 했다가 실패, 일가족이 동반 자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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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해운 경영인 중 또 한 분 인정이 넘치는 분은 현 KCTC 신태범 회장이다. 신 회장의 따스한 인정미를 나타내 주는 좋은 일화가 있다. 십 수 년 전 신 회장의 해양대 동기동창인 오용한 당시 (주)나우월드 회장의 회고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 회장이 40세 되던 해였다. 부산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였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신 회장이 오 회장을 병문안 와보니 이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 회장의 담당 의사가 늑막염을 간염으로 오진하는 바람에 오 회장이 3일 동안 인사불성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사태를 파악한 신 회장이 즉시 부산의대 내과 과장을 남의 병원으로 모시고 와 진단케 하고 오진을 바로 잡은 바람에 곧바로 호전, 결국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며 오 회장은 신 회장이 자신의 생명을 살려 준 은인이라고 회고한 것이다.
필자는 신태범 회장을 70년대 초 고려해운 상무 시절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교분을 맺어 왔다. 그리고 신 회장이 한국 최초의 계획 조선 사업을 수립, 신양호 건조에 성공한 해운사적 이력을 안 뒤 30년 동안 신 회장의 각종 자료를 모아온 바 있다.
이로 인해 신 회장 자신보다 필자가 신 회장에 대해 귀중한 자료들을 더 많이 보관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신 회장으로 부터 아낌없는 사랑과 신뢰를 받아왔다. 그래서 지금부터 12여 년 전 필자의 아내가 타계했을 때 대부분의 해운인들에게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지만 신 회장께는 연락했다. 그리고 신 회장은 직접 문상을 와서 필자를 위로해 준 적이 있었다.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신 회장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신 회장은 빠지지 않고 식사를 함께 하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식사비는 신 회장께서 부담하고 있다.
45년 동안 해운계에서 해운기자 또는 해운 전문지 발행인으로 일하다 보니 해양대 출신 1기부터 12기 까지 원로급 해운인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의 해운인들이 신태범 회장을 따스한 인간미의 소유자라고 평가하는 모습을 자주 목도, 필자의 생각이 단순히 개인적인 호감만은 아님을 알게 되기도 했다.
또 한 명의 현역 해운인으로 따스한 인정미의 소유자는 유니버살로지스틱스그룹의 이용기 회장이다. 이 회장은 왕상은 회장처럼 필자가 일생을 평전으로 집필, 단행본으로 발간한 바 있어 그 어떤 해운기자보다 잘 알고 있는 터이다.
이용기 회장은 6번이나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남은 남다른 경험으로 인해 인생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과 그리고 사람간 친화력이 탁월한 분이다. 또 한 번 인연을 맺은 해운인과는 변함없는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필자에게도 시시때때로 연락, 식사를 대접한다.
그리고 돌아갈 때는 반드시 기사가 딸린 자신의 차로 필자를 사무실 또는 집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따뜻한 인정미가 넘치는 현역 해운 경영인이다.
- 이종옥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