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운 칼럼] 기억하기조차 싫은 Y사장과의 사연

취재부
2017-12-12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되면 부득불 지나온 11개월을 되돌아보는 순간들을 갖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유수 같아서 어느 사이 올해도 마지막 달을 맞게 되었구나 하는 감회에 젖게 된다.
특히 필자는 매월 마지막 주에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외길 해운기자 45년)을 연재하고 있어 지금까지 지내 온 해운 인생에 대해 상고해 볼 기회가 자주 주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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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의 필자 해운인생 중 피고용인 시절이 18년, 동업기간 1년, 그리고 나머지는 해운 전문지 오너의 신분으로 지내왔다. 피고용인 18년 중 전역 후 공채 신입기자로 입사한 해운 주간지 회사에서 13년을 근무, 최종 직위는 대표이사 사장(발행인 겸 편집인)이었다.
그리고 동업 1년 만에 배신을 당해 다시 피고용인 신세로 전락, 이후 5년 정도 해운 주간지 편집국장을 지낸 후 지금의 무역운송신문을 92년에 인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피고용인 시절 3명의 사주를 모신 셈인데 첫 번째 사주 L회장은 장단점이 뚜렷한 분으로 필자를 신입기자로 채용, 사장에 이르기까지 성장 시켜준 긍정적 측면과 동시에 재물에 대한 집착이 심한 부정적 성향도 공존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인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의 S사장은 필자의 동향 선배로 해운에 대해서는 문외한 이었지만 의리 있고 인맥이 넓은 분으로 필자에게 오늘의 무역운송신문을 넘겨준 고마운 분이었다.
문제는 두 번째 사주 Y사장으로 기억하기조차 싫은 경영적 능력도 형편없었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함량미달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칼럼 등에서도 한 번도 언급해 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오늘은 부득이하게 기억하기조차 거북한 Y사장과의 사연을 회고해 볼 까 한다.
동업자의 기묘한 술수로 50% 주식 지분을 탈취당한 후 믿었던 오랜 친구의 상상하지 못한 처사에 너무나 큰 충격에 빠져 몸져 누워있던 필자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신생 해운 전문지 Y사장(본인이 주간으로 불리기를 원했다.)이 만나보고 싶다는 전갈이었다.
Y사장은 필자에게 편집국장을 물색하고 있었다며 함께 일해보자고 제의, 이에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임원급 대우와 둘째는 독립된 근무 공간이었다. Y사장은 필자의 요구에 주저 없이 승낙, 바로 그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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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사장이 경영하던 해운 주간지는 주 2회 발행으로 이미 편집국장과 기자들의 편집국 진용은 갖추어져 신문이 발간되고 있었다. 그리고 Y사장과 또 한 명의 임원이 있었는데 전우성 이사였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전 이사는 이후 그 회사에서 필자의 유일한 우군이자 대화가 통하는 절친의 사이가 되었다.
Y사장은 기존의 편집국장이 근무하고 있으니 우선 출판국장 겸 논설위원의 직위로 주 2회 사설 및 칼럼(시론 등), 그리고 가벼운 가십형 칼럼 등을 연재하면서 지내다 편집국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근무 공간은 자신과 전 이사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임원실이자 회의실에 마련된 곳에 필자의 책상을 배치해 주었다.
당초 약속과는 다르지만 Y사장 등 모든 임원이 한 공간에서 근무하는 시스템이니 어쩔 수 없다며 양해를 구해,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날 이후 필자는 한 6개월 정도 매주 엄청난 분량의 원고 작성에 시달렸다. 그리고 6개월 후 기존의 편집국장이 새로운 매체(공업신문으로 기억되는)로 이직한 뒤 필자는 정식으로 주 2회 발간의 해운 주간지 편집국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 때 필자 밑에서 근무했던 기자 중 하나가 몇 년 전 타계한 정웅묵 기자였다.
편집국장에 부임, 상황을 파악해 보니 Y사장과 몇몇 기자들이 비공식적으로 광고 리베이트 30%를 적용하는 비밀스러운 일이 은밀히 전개되고 있었다. 해운기자라는 사명감이나 자존심 보다 광고를 수주, 광고료의 30%를 챙기는 영업직에 더욱 치중, 반쪽짜리 기자라는 점이 편집국장인 필자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신생 해운 주간지로서 경영 여건이 취약, Y사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측면을 이해, Y사장에게 항의까지는 않았지만 전 이사와는 여러 차례 문제점을 제기했다. 전 이사의 동의도 얻었다. 문제는 이 뿐이 아니었다. 이 회사에서 2년 정도 근무했는데 단 한 차례도 급여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임원급 대우를 받기로 사전에 약속했으나 출근 이후 일은 시키면서 도무지 급여를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처음 몇 달은 Y사장이 회사 사정상 자신을 포함, 전 이사 등 임원들에게는 급여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며 회사 형편상 몇 달만 참아달라고 양해를 구해 온 이후 도무지 급여를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필자 앞의 편집국장에게는 급여가 꼬박꼬박 지불되었음을 추후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회사의 편집국장은 임원이 아니었다. 또 임원으로 서류상에 등재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Y사장에게 철저히 속은 셈이라 이 회사에 근무했던 2년 동안 필자는 첫 번째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과 이 회사 주식 10%를 처분한 자금으로 2년 동안 생활을 해야 했다. 여기에다 필자가 사표를 던진 결정적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필자 밑의 J기자가 Y사장과 밀착, 광고 리베이트를 챙기면서 기고만장하여 필자의 지시에 불응, 이를 문제 삼자 Y사장이 J기자를 두둔하고 나선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필자는 주저 없이 Y사장에게 사직서를 던지고 서인곤 사장이 경영하던 오늘의 무역운송신문 전신인 해운 매체의 편집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직했으니 그동안 체불했던 임금을 달라고 Y사장에게 직접 요구했으나 그 회사를 떠나고도 오랜 기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법적인 문제로 까지 야기되자 정웅묵 기자가 찾아와 Y사장의 간청이라며 오랜 기간에 걸친 분할 지급을 제의, 이를 수락하여 밀린 급여를 받아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Y사장에 대해서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사연이라고 회고한 것이다.

- 이종옥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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