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도 한번 언급했듯이 인간이 짐승하고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세상에서 터져 나오는 각종 범죄를 보노라면 짐승과 구분할 수 없는, 어쩌면 하등 동물보다 못한 인면수심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람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가장 대표적인 범죄가 성범죄이다. 그것도 짐승보다 못한 추악한 성적 범죄이다. 의붓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를, 또 의붓아버지가 어린 딸을 성폭행하는 수치를 모르는 짐승보다 못한 몹쓸 짓거리를 하는 추악한 인물들이 너무나 자주 등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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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항해운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한 해운인들, 특히 성적으로 더러운 추문을 일으켜 자신의 이름에 먹칠했던 해운인들이 더러 있었다. 특히 해운 전문지 여기자들을 대상으로 추문을 일으킨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을 일삼았던 몇몇 해운인들의 사연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B사장이다. 요즈음같이 다들 회장이라는 타이틀 보다 사장으로 불리던 20세기 때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필자가 무역운송신문을 인수, 해운 전문지 오너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90년대 말 B기자라는 여기자가 있었다. 그다지 뛰어난 미모도 아니고 스타일이 눈에 확 들어오지도 않는, 그야말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여기자였다. 필자가 그동안 후배 또는 부하 직원으로 데리고 있던 여기자들에 비해 특별한 여성적 매력이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B사장의 눈에는 B기자가 성적 매력이 넘쳐났다고 보인 모양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거창하게 인터뷰를 하고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를 구실로 B사장은 B기자를 서울 인근 유명 명소의 음식점으로 데려가 대낮부터 질퍽하게 술잔치를 벌렸다.
B기자는 여자치고 술이 아주 센 편이었다. B사장과 양주와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상당량의 알코올을 섭취했다.
B사장은 아마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이 정도 음주량이면 B기자가 비몽사몽이 된다고 판단, 자신의 야욕을 채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경기도 인근의 은밀한 음식점 집의 독방을 사전에 예약한 것이다. 이 방은 B사장이 친구들과 고스톱을 칠 때 자주 이용했던 곳이어서 지리적으로도 B기자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B사장은 B여기자가 웬만한 말술의 술꾼보다 주량이 더 세다는 사실을 모르고 벌인 작전이었다. B기자보다 B사장이 먼저 취해버렸다. 그리고도 욕심을 버리지 못해 B기자에게 자신의 지갑을 보여주면서 수북이 담겨져 있는 수표(그것도 백만 원 권)를 줄 테니 같이 자자며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기겁한 B기자,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 도망친 후 지나가는 봉고와 트럭을 번갈아 갈아타고 택시가 다니는 대로까지 나와 늦은 오후에 귀경했다. 그리고 공중전화도 일단 귀사 불가능을 보고한 후, 그 다음날 출근한 후 상세한 사건 내용을 필자에게 토로했다.
그러면서 강간 미수로 B사장을 고소하겠다며 펄펄 뛰었으나 일단 B사장이 어떻게 나오는지 본 후 최종적으로 법적 조치를 해도 늦지 않겠다는 의견을 들려주었더니 동의한 후 잠잠해 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전 B사장은 B기자에게 전화, 만나자는 제의를 해 왔고 B기자는 이에 응한 뒤 약속 장소로 나갔다. B사장이 무슨 처방을 효과적으로 했는지 모르지만, 그날 이후 B기자는 B사장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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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여기자를 상대로 추악한 성희롱을 전개한 사건은 불과 몇 년 전 필자가 공채 신입기자로 입사, 편집 부분의 모든 직책을 거친 후 대표이사 사장까지 역임한 바 있었던 K사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K사 창업자 L회장이 타계하자 L회장 부인의 친인척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해운 단체 임원 경력이 있었던 S씨를 편집위원으로 영입했다. S위원은 필자가 해운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해운 관련 협회에 갓 입사한 인물로서 어느 경제지 기자 경력이 있었던 해운인이었다.
인간관계가 그다지 원활하지 못해 해운계 인사들과도 원만하지 못한 처신으로도 유명세를 탄 적이 있었다. 해적선 퇴치와 관련, 원성을 산 사건을 필자는 직접 이해 당사자로부터 청취한 적도 있었다.
이런 S위원은 해운 전문지에 근무하면서 E-Mail로 여기자들에게 야동을 송부, 이를 본 여기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같은 추악한 일은 곧 전체 해운 매체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기가 막힌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필자였다. 필자는 과거 해운 여기자들을 근무시킴에 있어 남기자들에게 여기자를 누이와 같이 담백한 사이가 될 것을 강조했다. 물론 총각∙처녀 기자가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한다면 그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기혼의 남기자가 미혼의 여기자에게 어떠한 색깔 띈 시선을 보내거나 성희롱이 아닌, 허튼소리라도 건네면 바로잘라버린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운 전문지에는 여자가 많기 마련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몇 번 언급한 바 있어 더 이상 거론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여기자를 함부로 대하면 용서하지 않았다. 당연히 필자 자신 역시 여기자들에게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언사는 한 번도 입에서 내보낸 적이 없었다. 행동 또한 상사라는 편집 분야의 절대적 권위를 앞세워 여기자를 압박한 적도 없었다.
이 같은 필자의 처신을 입증해 줄 현역 해운 여기자도 있다. 바로 월간 해양한국의 이인애 편집국장이다. 이 국장은 80년대 후반 필자가 편집인이었던 해운 매체에서 일선 기자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당시 이 국장 외에도 여기자가 서너 명 있었다. 따라서 이 국장에게 물어보면 필자가 업무적인 측면 외에 여기자에게 어떤 오해를 살 언행도 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편집부문이라도 남자 상사, 그것도 기혼의 남자 상사가 여기자들에게 성희롱의 언사나 S위원 같은 추악한 짓거리를 하면 절대 상사로서 존경하거나 예우해 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상사다운 상사나 선배다운 선배 대접을 받으려면 여기자에 대해서도 담백한 언행으로 일관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