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천항에서 어느 외국 선주의 대형 자동차 전용선에 화재가 난 적이 있었다. 적재된 천여 대의 중고 자동차가 소실되는 참사를 보여주었다. 이 사건에 필자가 남다른 감회를 지니게 된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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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고 선박의 선주인 외국선사가 한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 지사 형태로 한국에 진출해 있다고 듣고 있다. 그런데 십 수 년 전 한국GSA가 존재할 때 이 한국 대리점 선사 경영진과 필자간 필자로서는 도무지 이해 못할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 외국선사는 필자가 발행하는 해운 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고 있었다. 일반 잡화 수송의 정기선도 아닌, Semi Liner 형태의 자동차 전용선의 입출항 스케줄 광고를 매주 게재, 참으로 고마운 외국선사 광고주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외국 선주 대리점 선사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광고료를 invoice에 의한 외국선주 결재가 아닌 대리점선사 명의의 세금계산서 발행이었다. 외국 선주와 합의하에 광고료 집행이 한국 대리점 선사 몫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한국 대리점선사가 외국 선주로 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집행, 순수 대리점 선사 비용은 아니었다. 헌데 광고료의 10%에 해당되는 부가가치세까지 포함된 광고료를 입금시키지 않는 금액만 항상 송금해 왔다. 광고 실무 책임자를 통해 사연을 알아봤더니 대리점 자체 경비 조달 차원이라는 상당히 궁색한 변명이었다.
한 마디로 광고료의 10%를 한국 대리점 선사가 선주를 속이고 착복하고 있음이 정확한 진단이었다. 광고료가 매달 집행되지만 수백만 원도 아니고 50만 원 정도로서 5만원을 착복하는 참으로 쪼잔한 대리점선사였다. 하지만 회사 방침이 그러다보니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표현으로 그야말로 광고주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 갑질을 하는 형태였다.
그러던 2000년 초, 이 외국선사의 CEO가 한국 방문 일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해운 전문지 기자회견을 계획하면서 필자의 주간지에 대리점 선사 측이 특별 요청을 해왔다. 외국 본사 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영문으로 게재해 달라는 것이었다.
광고주의 특별한 부탁이어서 급히 영문 기사 작성이 가능한 전문 인력을 구해, 인터뷰를 대비하고 인터뷰 후 필자 발행 주간지만 유일하게 장문의 영문 기사를 게재했다. 그리고 영문기사가 게재된 신문을 외국 선주 본사에도 수 십 부 송부했다. 이 같은 제반 업무에 필자 회사로서도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었으나 이를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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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일련의 모든 힘든 업무가 종료되자마자 느닷없이 한국대리점 선사 측에서 광고 게재 중단을 통보해 왔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실무 책임자를 보내 제반 사정을 알아보았다. 어이없게도 필자 밑에서 근무하다 새로이 해운 주간지를 창간한 매체에 관고 게재를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해운 주간지 광고도 광고주 마음대로이니 게재 매체를 변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 밑에 근무하던 직원의 해운 주간지로 변경도 도덕적으로 문제이지만 그것보다는 사전에 하등의 통고 없이 그것도 영문기사 같은 까다로운 업무는 다 챙긴 뒤 일방적으로 광고 게재를 중단함은 누가 보더라도 무리수인 것만은 확실했다.
게다가 더욱 분노케 한 바는 미안하다는 의사 표시 한 마디 없이 "광고는 광고주 마음"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던지는 한국 대리점 선사 임원의 언사에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래서 필자는 대리점 선사 사장에게 내용 증명 한 통을 보냈다.
아무리 광고는 광고주 마음대로이지만 영문 기사까지 부탁, 이를 어렵게 수행하도록 한 뒤 곧바로 광고 게재를 중단함은 거래 상도의 상 있을 수 없는 일방적 횡포임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동안 외국 선주 모르게 중간에 착복한 세금에 해당하는 광고료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수 년 동안 쌓인 금액이어서 상당 액수가 계산되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사과도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요구를 거절할 시 그 동안의 제반 사항을 외국 선주 본사에 통고하겠다는 의사 표현도 덧붙였다. 대리점선사 대표이사 앞으로 보낸 이 내용 증명의 반응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담당 임원이 필자에게 직접 전화, 향후 광고를 연 천만 원에 상응하는 액수를 집행할 수 있다는 사탕발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인 것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실제 광고 집행은 년 3-4회에 몇 백만 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2년 정도 세월이 흐르자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들과는 인연이 끊어졌다.
그리고 필자 역시 잊어버렸다. 그러다 이번에 사고가 난 선박의 선명을 TV뉴스로 듣고 과거 예전의 그 말 많고 사연 많았던 외국선사 소속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새삼 절감한 바는 어떤 형태로든 회사 경영을 하면서 거래처에 필요 이상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었다.
46년의 해운 주간지 생활 중 적지 않은 해운 경영인들이 거래 상대 회사에 물질적∙정신적 상처를 입히는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같은 돌팔매질은 언젠가 되돌아온다는 사실도 여러 번 실감했다. 필자 자신이 경험한 일도 그러하거나 해운 회사 간 또는 쉬퍼와 캐리어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쉬퍼와 캐리어간은 갑을관계가 틀림없다. 그렇다고 쉬퍼가 캐리어에게 마음에 상처를 줄 정도로 갑질을 할 경우 언젠가 결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게 됨을 과거 여러 번 목도했다. 갑자기 어떤 특별한 사정으로 특정 노선에 선복이 부족해져서 쉬퍼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도 간혹,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심한 갑질을 했던 쉬퍼는 제 때에 선복을 구하지 못한다. 자신이 그동안 뿌려왔던 씨앗에 대한 열매를 걷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는 던진 만큼 언젠가는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법칙이 성립됨이 부인 못할 사실이다.
- 이종옥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