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운 칼럼] 사장 사임, 동업 그리고 배신

취재부
2020-05-12

창업자 회장과 6촌 동생 사장간 경영 분쟁을 해결하자 회장이 필자를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앉혔다. 상무이사에서 두 단계 월반한 파격적인 인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해 보니 경리ᆞ회계에 엄청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주인 회장이 회사 공금을 자기 주머니 돈 인양 아무런 근거 서류나 영수증 처리 없이 가져가 버리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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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은 경리부장에게 수시로 회사 공금을 가져오라고 명령, 이렇게 가져가는 회사 공금이 80년대 중반 월 3-5천만 원이나 되었다. 이 같은 기막힌 현실을 찾아낸 것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회장이 대표이사 사장인 필자에게는 보고하지 말고 자신의 명령(공금 인출)을 시행하라고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6촌 동생이던 전임 사장에게 들은 바 있어 대충 짐작은 했지만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차후 세무당국의 조사라도 있게 되면 대표이사 사장인 필자에게도 책임이 돌아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제 공금 횡령은 사주가 한 짓이지만 대표이사 사장 역시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상식임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선 경리부장을 다그쳤다. 대표이사의 결재 없이 나간 금액만큼 우선 경리부장의 공금 횡령으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는 실제 회장에게 빼돌려지는 공금의 현황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회장의 회사 돈 가로채기의 전말을 확실하게 파악하게 된 것이다.

이 사태를 놓고 또 하나의 궁금증을 경리부장에게 물었다. 회장이 가져간 공금의 회계 처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대답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정상적인 영수증(당시는 간이 세금 영수증)에 “0”하나를 더 붙이는 희한한 수법이었다. 예를 들어 10만 원짜리 영수증을 백만 원 짜리로 만드는 식이었다. 그야말로 웃음이 절로 나오는 엉터리 회계 처리였던 것이다. 세무 당국이 조사라도 나오면 회사가 곧바로 풍비박산이 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장과 조용히 한적한 식당에서 식사를 청했다. 그리고 필자가 신입 기자로 시작, 오늘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까지 성장시켜 준 회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새삼스럽게 무슨 인사냐고 묻는 회장에게 필자는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떠한지는 잘 아실 것이라고 운을 띄운 뒤 이대로 마구잡이식의 회계 처리를 지속하면 회사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으니 제발 합리적인 세무 처리를 하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진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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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간곡한 요청에 한 동안 자제하던 회장은 곧 다시 예전의 상황을 재연시켜 나갔다. 그래서 필자가 이러다가 세무 당국이 조사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기가 막혔다. ‘대표이사인 필자가 나서 돈이든 여자이든 접대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해야 한다’라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이 말에 필자는 그야말로 절망감을 느꼈다.

때 마침 전임 사장인 6촌 동생이 신생 해운 주간지 동업을 제의해 왔다. 자금은 모두 자신이 조달할 터이니 필자는 조직 관리, 특히 편집 부문을 맡아 달라는 제의였다. 단, 급여는 당분간 기존의 해운 주간지 대표이사 사장 만큼 주기는 어렵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주식 배분은 50대 50으로 하고 타이틀만 자신이 사장을, 필자는 대표이사 주간으로 하자는 복안을 가져왔다.

그래도 필자가 망설이자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필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해운 주간지는 발행할 수 없으니 그렇게 될 경우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해운 주간지를 공중분해 시켜버리겠다는 위협이었다. 실제 경리 부정에 관한 엄청난 자료를 지니고 있어 빈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해운 주간지의 많은 기자들과 인력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됨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새로운 해운 주간지 동업을 시작했다. 비록 동업이지만 사주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필자 개인 힘이 아닌, 조직이 작동하는 편집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이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힘든 창간 작업을 완료, 편집 체제가 완비되어 사람이 아닌 조직력으로 해운 주간지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에 동업자는 기가 막힌 묘수를 찾아냈다. 아니 필자의 경리ᆞ회계의 무지함을 십분 활용한 계략이기도 했다.

동업자의 심복인 경리과장이 필자를 찾아와서는 창간 첫 번째 회계연도에 적자가 너무 나서 이대로 세무서에 신고하면 대주주인 필자에게도 엄청난 불이익이 온다고 말했다. 그래서 동업자 발행인이 이런 위험부담을 자신이 떠안고자 필자의 주식 50%를 일시적으로 자신의 명의로 돌려놓을 수 있도록 주식 위탁용 인감 증명서 등 제반 서류를 준비해 달라는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해 왔다.

완전 사기였으나 필자는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제반 서류를 해달라는 대로 모두 넘겨주었다. 그랬더니 며칠 후 회사 게시판에 공고가 하나 붙었다. 내용인 즉, “이종옥은 주식이 하나도 없으니 회사를 나가달라.”는 문구였다.

주변의 법률 조언을 구해본 결과 원인 무효 소송을 하면 해결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법적 대응을 하라는 성화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믿었던 친구에게서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그리고 상장 기업도 아닌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신생 해운 주간지 주식 50%가 그다지 큰 가치가 없다는 또 다른 조언에 따라 법적 대응은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또 다른 신생 해운 주간지 편집국장에 취임, 피고용인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1992년 현재의 무역운송신문을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필자가 해운 주간지 발행인으로 활동하던 초창기 배신했던 동향 친구는 회사가 승승장구 하는 통에 ‘악인의 형통’에 마음이 많이 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이해의 상황에 까지 마음을 추스른 시점에서 배신자의 해운 주간지는 문을 닫고 말았다. 그래서 용서가 가장 큰 복수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한 바 있었다.


- 이종옥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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