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해운기업 많이 나와야

취재부
2020-03-03

우리 외항해운 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3대 업종이 있다. 선두는 단연 선박운항업이다. 그리고 그 뒤를 대리접업과 해상 포워더가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들 3개 해운 업종 모두 장수 기업이 드물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우선 선박운항업은 워낙 운임의 기복이 심한 시황 산업이어서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같은 현상이 한국적 결정타를 1984년 해운 통폐합 조치로 실현시켰다. 상당수의 국적선사들이 흡수 통합됨으로써 간판을 내렸다. 구조적으로 수명을 단축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국내 1위 운항사를 비롯한 상위 랭커들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해운기업은 거의 없다. 1위를 유지해 오던 대한해운공사와 한진해운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20세기 해공에 이어 2위 운항업체였던 범양전용선은 STX팬오션 등으로 사명이 바뀌었다. STX그룹의 소멸로 생명력을 지속하지 못했다.

20세기 3위 운항업체인 조양상선, 그리고 역시 대형 운항업체였던 코리아라인(후일 대한해운) 역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반면 중견 운항업체였던 고려해운과 범주해운이 각기 50년 이상의 장수기업 반열에 올랐다. 해운부대업인 해상포워딩업체인 제일항역 역시 50년을 넘긴 장수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또 천경해운이나 태영상선같은 한일항로 위주의 소형 운항업체들도 장수기업으로 부족함이 없는 해운기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고려해운이나 범주해운, 또 제일항역처럼 지속적 성장·발전을 해 온 장수 해운기업이라고 부르기는 조금은 민망하다.

해운부대업중 대리점선사는 90년대 이후 대부분 지사 형태의 한국 법인으로 변경되는 격변기를 거치는 바람에 협운해운 및 계열사 몇 군데를 제외하고 장수 해운기업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고 말았다.

해상 포워더 또한 1976년 해운항만청에 의해 처음 정식 업종으로 인가되어 장수 해운기업이 형성될 기반 자체가 취약한 편이다. 여기에다 3대 외항업종 모두에 해당되는 장수 기업을 가로막는 장벽이 또 하나 있다.

이는 고려해운이나 범주해운같은 대표적인 장수 해운기업이 지닌 공통분모를 확인해 보면 역설적으로 장수 기업의 한국적 부족 현상을 도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해운이나 범주해운 모두 철저한 조직 관리를 통한 생산성의 극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는 사실이다.

특히 공정한 인사 제도 시행과 복지 향상 등의 조치를 통해 일할 맛 나는 해운 기업으로 조직 관리의 지향점을 추구한 것이 장수 기업의 또 하나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장수하지 못하고 간판을 내린 상당수의 해운 기업들이 조직 관리에 허점을 보였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먼저 해운공사의 경우이다. 국영 해운기업으로 출발, 십 수 년이 흐른 시점에서 민간인에 불하되었지만 여전히 관료적 색채가 농후했다. 또 웨이버제 실시에 따라 영업적 측면에서 안이한 자세 또한 심한 편이었다.

임직원 자체는 국영기업답게 우수한 인재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이를 한마음으로 결집시키는 조직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기에는 국영 기업일 경우는 물론이고 민간 기업으로 전환된 뒤에도 집권 여당의 추천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경우가 흔해서 모래알 같은, 주인 의식 결여의 조직원 성향이 농후, 서비스 업종인 해운기업의 특징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서주산업의 윤석민 회장에게 넘어가 대한선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이번에는 친인척에 의한 경영과 정치적 성향으로 해운기업 답지 않은 성향을 지속, 끝내 한진해운에 합병되고 말았다.

한진해운의 조직 관리에 허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시기는 조수호 회장 타계 후 부인 최은영씨가 경영 전면에 나서 자신의 심복인 금융권 출신을 사장에 앉힌 후 부터이다.

전문 경영인의 해운 전문성 부족은 나머지 임원들이 보완하더라도 대주주인 최은영 회장의 전횡을 막고 못하는 구조적 취약점으로 방대한 조직은 제 기능을 확보하지 못해 마침내 좌초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범양전용선이나 조양상선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범양전용선은 사주인 박건석 회장과 전문 경영인 한상연 사장간의 알력이 생겨 박 회장이 투신자살하는 비극이 발생, 이후 조직 관리가 급격히 무너져 버려 장수 해운기업의 반열에 들지 못했다.

조양상선 또한 창업자 박남규 회장의 아들 5명이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역시 상무 순으로 경영일선에 등장, 나머지 임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조직관리가 엉망으로 되면서 장수 해운기업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결과를 도출하고 말았다.

이처럼 한국의 해운기업들이 장수하지 못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조직 관리의 허점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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