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운 칼럼] 해운기자 반세기의 보람

취재부
2023-04-12

70년대 초 한국 최초의 해운 주간지 공채 기자로 입사, 한국 최초의 해운 취재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주간지에서 모든 편집 분야 직책을 거쳐 마침내 동 주간지의 대표이사 사장이자 발행인 및 편집인의 위치에 올랐다. 비록 전문 경영인으로서 사주가 있는 회사였지만 한 회사에서 일선기자를 거쳐 대표이사 사장에 이르렀다는 경력은 필자로서도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했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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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올해로 해운기자로 시작된 해운 매체 경력이 만으로는 50년, 즉 반세기가 넘었다. 햇수로는 51년을 한결같이 해운계에 몸담고 있다. 이런 경력도 필자로서는 항상 긍지를 지니게 하는 요소이다. 앞서간 선배가 아무도 없는 그야말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해운기자의 길을 오로지 자부심과 개척자적인 정신으로 오늘에 이르렀음 또한 보람 있는 세월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서 가다보니 어려움이 많았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역경을 딛고 일어나 해운기자로서의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 오늘에 이르렀음 또한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한번 회고한 적이 있었다고 기억되는데 해운 매체 근무의 보람은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해운 산업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제고를 위해 다방면의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필자 다음 세대의 해운 기자 양성에 주력, 오늘날 주요 해운 관련 전문지의 발행인 다수가 필자가 편집국장 하던 당시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해운 기록 문화 창달에 기여, 반세기 동안 원로 해운 평전, 그리고 해운기업사, 그 중에서도 30년사·50년사를 집필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세 가지 보람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자칫 필자의 자랑으로 비추어 질 가능성이 있어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겠으며, 이제 세 번째 부분 설명에 치중하고자 한다. 첫 번째 해운 인식 제고는 1981년 10월부터 1982년 9월까지 만 1년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KBS 라디오를 통해 해운계 소식을 필자의 육성으로 방송했다는 것이다. 이 당시만 해도 필자 회사 전화기에 장치를 설치하여 전화로 브리핑을 하곤 했는데, 그 이후 딱히 공중파 방송에서 해운과 관련한 정보 제공 프로그램이 없었음을 생각해보면 우리 해운 언론 역사에서 나름대로의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해운계 최초의 공영방송 KBS의 해운 분야 리포터 경력이 있다. 퀸엘리자베스호 같은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호화유람선의 입항시 필자가 직접 KBS 리포터로 나서 취재를 함께한 바 있었다. 이 밖에도 각종 해운 관련 세미나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해운 인식 제고를 위해 비해운인들에게 해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의 간략한 언급은 80년대 초중반 필자의 손으로 신입기자로 선발, 해운의 A부터 Z까지 이론적으로 이해를 시키는 한편, 해운 분야의 전문용어 습득을 위해 최선을 다해 교육을 시켰다는 점이다. 이런 기초적 토대가 기반이 되어 당시 필자에게서 배웠던 기자들이 오늘날 해운 주요 매체의 발행인 또는 편집국장으로 성장했음은 물론이다. 다수의 산업 영역에서 전문 언론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 해운 산업 만큼은 그 어떤 기성 언론보다도 전문 언론이 지금도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지켜보면서, 현 전문 언론인을 가르치고 해운 언론인으로 자리잡는데 역할을 한 필자로서는 여간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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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 번째 보람, 즉 해운 기록 문화 창달에 대해 언급하기로 하자. 해운 관련 단행본의 발간과 더불어 50여 명이 넘는 원로 해운인들의 해운 인생을 신문으로 연재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10여권의 단행본을 집필, 발행했음은 당연지사였다. 돌아가신 우리 해운업의 시작을 알린 해운인을 비롯하여,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1세대 해운인, 그리고 우리 해운의 중흥을 이끌어 온 2세대 해운인까지, 기록을 남길 가치가 충분한 해운인들에 대한 인생 역정을 필자 손으로 하나하나 기록한 바 있었다. 그 기록을 신문으로 연재했을 당시 많은 독자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그 호응에 부응하고자 10여 권의 단행본도 출간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이 필자에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지난 해운 기자 인생에서 큰 가치를 부여할 만한 족적이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조선왕조 시절만 해도 승정원일기를 비롯해 조선왕조실록 발간 등 기록 문화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진 바 있다. 그러나 광복 이후 6.25 전쟁과 군사정권의 비민주적 정치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기록 문화도 소홀해지는 풍조로 바뀌었다.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이 흔히 범하기 쉬운 정책으로 기록 문화의 기질이 소멸된 케이스이다. 그리고 선거에 의한 민주화 정권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기록 문화에 대한 중요성 인식, 언론 자유화와 상호 상승작용을 도출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운 분야의 기록 문화는 지나간 시기, 즉 50년대와 60년대, 또 70년대까지의 정리가 전무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기록 문화의 중요성을 우리 해운계가 여전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라고 판단된다.

이런 점을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바로 원로 해운 경영인, 특히 1세대 해운 창업자들의 해운 인생의 활자화이다. 이 분들의 해운계 활동 기록은 반드시 50, 60년대와 70년대 상황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가 반세기 동안 50여 명이 넘는 원로 해운인들의 해운 인생을 활자화한 경력은 곧 해운 기록 문화 창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가 본 칼럼란을 통해 오랜 기간 강조해 온 바 있다.

언젠가 해운 관련 학자들이 해운 기업사나 해운 인물사 등을 연구하는데 필자가 집필하고 저술한 해운인 평전이나 해운 기업사가 중대한 자료로서 각광 받게 될 것을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이런 여러가지 부분을 종합해 볼 때, 세 번째의 보람이 필자로서도 소중하고 보람있었음을 자부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 이종옥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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