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운 칼럼] 스카이 출신의 두 기자

취재부
2023-03-15

필자가 근무했던 해운 주간지에는 양 기자라는 인물이 근무했었다. 양 기자는 서울대 조선공학과에 입학한 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시위에 적극 참여한 바 있다. 그 시위 전력으로 인해 학교에서 퇴교당한 뒤 필자의 해운 주간지에 입사했다. 퇴교로 인해 입사 당시 최종 학력은 고졸이었지만, 조선공학을 전공했던 경력으로 인해 해운·조선 업무에 대한 문외한이 아닌 점을 필자가 고려하여 입사시킨 것이다.

양 기자는 원고 작성이나 취재 능력도 뛰어났다. 한 가지 잊히지 않는 기억은 어느 날 업무 시간 중 안기부 요원들이 회사에 들이닥쳐 필자와 편집국 소속 기자들, 나머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양 기자 손목에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갔다는 것이다. 수갑을 채우는 모습에 편집국 소속 여기자와 근무하던 여직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양 기자는 풀려났고,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양 기자는 퇴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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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P기자와 그 뒤를 이어 입사한 고대 농대 출신의 K기자가 있었다. 우선 P기자는 기사 작성의 기자가 아닌, 순수 편집(레이아웃)으로 들어왔다. 성실한 P기자는 이공학도 답게 순수 편집업무를 잘 수행했다. 그래서 대리로 승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 필자는 편집이사 겸 편집국장으로 스케줄 담당 K여사원이 필자의 비서 일도 겸했다. K여직원은 필자 이웃 동네인 흑석동에 살고 있어 사당동 필자의 회사 출근 코스에 있음을 알게 되어 간혹 회사 출근 승용차에 탑승시키기도 했다.

K여직원은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고교 졸업 후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는데 몇몇 직장을 거쳐 필자 회사에 입사했다. 성격이 상냥하고 처신이 아주 유연해서 대졸 여기자들은 물론이고 남자 기자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러다 돌연 사직했는데 조금 지나 필자를 찾아와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P기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P대리를 불러 왜 일찍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조금 나무랬다. 그랬더니 쑥스러워 말을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필자는 두 사람에게 축하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윽고 결혼식에 필자 아래 모든 기자들을 데리고 참석했다. 주례가 주례사를 하면서 S여직원은 숙명여대를 졸업한 재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데리고 간 몇몇 대졸 여기자가 “아닌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필자는 조용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P대리 부모들에게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P대리가 그렇게 조치한 것으로 이해되어 혹시라도 신랑 하객들이 이 얘기를 듣고 소문을 내지는 않을까하여 주의를 준 것이다.

이렇게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고, 두 사람은 오붓하게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P대리가 사표를 내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박봉의 해운 주간지 월급으로는 가정 경제를 감당하기 어려웠음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P대리는 서울 사당동 소재 K고등학교에 물리 담당 교사로 취직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래도 교사라는 훌륭한 직장으로 이직하게 된 터라 필자는 기쁜 마음으로 P대리의 사표를 수리하고 떠나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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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기자를 뒤이어 들어온 K기자는 고려대 농대 출신이자 대학 역도 선수라는 특이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농업 전문지에 근무하다 느닷없이 해운 주간지 기자로 이직한 케이스였다. 처음에는 성실하게 근무도 하고 무엇보다 기사 작성 능력에 있어 필자로 부터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하나의 큰 단점이 있었다. 술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필자 소속 편집국 기자들은 물론이고 영업부와 총무부 등 타 부서 직원들과도 곧잘 어울려 술을 마시곤 했다. 문제는 결혼해서 어린 아기까지 있는 K기자가 주사가 매우 심했다는 부분이다.

필자가 주관한 회식 자리에서는 술을 먹어도 주사를 부리지 않았다. 필자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려 했던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2차를 가서는 같은 부서인 편집국 기자들은 물론이고 타 부서 직원들의 회식 자리까지 찾아다니며 끝내는 주사를 부리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술에 취해 지나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거는 등 매우 심각하고 질 낮은 주사를 부리곤 했다. 역도 선수 출신으로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힘이 장사였다. 한번 K기자의 손아귀에 잡히면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했다. 상당한 사람들이 곤욕을 치루고 나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이런 주사를 부리다가 파출소에 끌려가 하룻밤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다. 회사로 연락이 와서 필자가 파출소에 찾아가 백배 사죄하고 꺼내 주기도 했다. 그 때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혼을 냈고, K기자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며 다짐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런 사태는 수차례 반복되었고 끝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K기자만큼 술을 좋아하는 총무 및 경리담당 이사이자 발행인 사주의 6촌 동생인 L이사의 부서에서 술을 마시다가 주사를 부리기 시작, L이사의 목을 휘어잡고 주먹으로 L이사 머리를 수차례 가격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K기자를 해고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수단을 부렸는지 경쟁지인 신생 해운 주간지의 기자로 자리를 찾아 근무하면서 수시로 필자 회사 소속 기자들을 만나 한 때 선배였다는 구실을 내세운 뒤 필자를 비난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온갖 주사에 파출소까지 가서 꺼내 주었고 용서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노라는 다짐도 받으며 근무시켜준 필자를 음해하는 것 자체가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버릇 어디 안 갔는지 경쟁 주간지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해운계를 떠나고 말았다는 후문을 들었다. 필자가 경험한 최악의 기자 중 하나가 K기자였다.


<이종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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