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8주년 발행인의 글 / 축사 및 창간 비화

취재부
2022-10-05

주간 무역운송신문이 2022년 10월 1일로 창간 38주년을 맞았습니다. 먼저 오랜 기간 동안 저희 신문을 애독해주시고 성원해 주신 업계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척박한 한국 해운 매체 풍토 속에서 38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굳건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해운계의 지원과 성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신문은 국내 해운 매체 중 3번째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신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70년대 초 국내 최초의 해운 취재 기자로 출발, 흔히 말하는 해운 기자 1세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는 저의 말이 아니라 범주해운 설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동 사 이상복 회장께서 인사말을 통해 50년사를 집필한 필자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전통을 바탕으로 저희 신문은 그동안 줄기차게 부르짖어왔던 해운계의 기록 문화 창달에 선구자가 되고자 합니다. 이는 저희 신문만큼 50-60년대는 물론이고 70년대와 80년대 국내외의 풍부한 해운 자료와 기록을 보유한 매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희 신문은 한국 해운매체사에서 귀중한 위치를 점함과 동시에 향후 해운학자들에 의한 적극적인 해운사 저술에 큰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선박운항업은 물론이고 해운부대업의 시작점부터 목도하고 취재한 자료가 있음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저희 신문의 앞날에 지속적인 성원을 부탁드리면서 다시 한 번 그동안 배려해주시고 도와주신 해운계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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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신문의 창간에는 3사람의 주역이 등장합니다. 필자와 필자의 동향 친구였던 L씨, 그리고 L씨의 고교 선배 서인곤 사장입니다. 저는 L씨를 통해 서인곤 사장을 소개받아 오랜 기간 유대 관계를 쌓아 왔습니다.

L씨는 필자가 몸담았던 한국 최초의 해운 주간지에 필자보다 1년 늦게 입사, 총무와 경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필자가 승진할 때마다 당시 사주의 6촌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함께 승진, 동일한 날짜에 임원(이사)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해운 주간지 창업자가 운영하던 도자기 제조 및 수출업체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L씨가 차출되어, 지방 근무를 하면서 상무이사로 승진했습니다. 동시에 필자도 해운 주간지 상무이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방에 내려간 L씨가 사주의 일방적 전횡과 제조업체답지 않은 경영의 난맥상을 이기지 못하고 사직서 한 장을 책상에 올려놓고 서울로 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곧장 저를 찾아와 새로운 해운 매체를 창간하고 싶다면서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경리·총무만 담당, 창간 등록업무는 물론이고 해운지 편집 분야에 문외한인 L씨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전두환 정권이 언론을 통·폐합하면서 신규 등록을 철저히 억제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 점을 L씨에게 주지시키고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L씨는 믿는 구석이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청와대 수석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중학교 시절 가정교사로 잘 아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해운 주간지 근무시간 외 퇴근 후 집에서 제반 등록 서류, 그 중에서도 발행 취지, 목적 등을 상세히 기술, L씨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신규 등록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청와대 수석이 몸을 사려 나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의에 빠진 L씨를 보고 서인곤 사장이 나섰습니다. 서인곤 사장은 당시 청와대 실세 비서관 P씨와 고교 동기동창이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해운 주간지 사주는 경영하던 제조업체의 부도가 임박하자 모든 주식을 차명으로 돌려놓은 뒤, 그래도 핏줄이라고 자신을 대신하여 L씨를 해운 주간지 대표이사 사장에 임명한 뒤 피신해 버렸습니다. 필자와 동급이었던 L씨가 한 순간에 필자의 상사가 되었는데 이런 상황이 조금 지난 시점에 서인곤 사장이 마침내 신규 해운매체 등록에 성공했습니다.

그러자 L씨가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해운 주간지 사장과 함께 새로운 해운 매체를 창간, 사주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서 사장이 반발, 자신이 성사시킨 일을 가로채는 격이고 지나친 욕심이라고 L씨를 꾸짖자 두 사람 사이는 완전 견훤지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서 사장이 L씨가 발행인으로 되려했던 신규 등록을 자신의 이름으로 변경하는 데 성공, 서인곤 사장이 새로운 해운 매체의 사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1984년 일어난 무역운송신문의 창간 스토리입니다. 서 사장 역시 해운업과 해운 매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어 필자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당초 필자가 기획한 것인 만큼 도와주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에 필자는 L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창간 업무를 도와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반 지면 구성과 내용 등을 잡아주었고 편집 책임자도 최정기 부장을 소개시켜 주어 마침내 1984년 10월 1일 창간, 그리고 1991년 서 사장이 공기업 사장으로 가면서 해운 매체를 1992년 초 필자에게 넘겨주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무역운송신문 발행인 李鍾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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