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무역운송신문 창간 39주년에 부쳐(2)

취재부
2023-09-29

필자가 처음 취재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들은 문장은 “무역운송신문 지금도 나와요?”라는 말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직전까지 무역운송신문에서 취재를 했던 전직 기자가 퇴사 후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면서 무역운송신문은 이제 사장의 병환으로 더 이상을 신문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기자 명함에 쓰인 매체 명을 보고 업체 관계자들은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한 달은 거의 “무역운송신문 계속 나와요.” 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하면서 인사를 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 않아도 명함들고 인사드린다는게 민망하고 어려운데, 신문사 망하지 않았다는 해명까지 해야 하니 그 하루하루가 너무도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신기한건 해명이던 뭐든 다니면 다닐수록 더 다닐 곳이 많아졌고 알아주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선사 관계자들은 해운 전문지 기자로 성공하기 위한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참 정신없이 명함 돌리면서 인사를 하고 취재를 한 결과, 필자는 6개월만이 아닌 그 이상의 시간을 기자로 보내기로 아버지와 합의했다. 그리고 올해로 필자는 17년차 해운 전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17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고마웠던 분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그 중에 몇 분을 꼽아보고자 한다. 한 분은 현 HMM 홍보실의 우병선 책임매니저이다. 필자가 처음 명함 들고 찾아간 사람이 당시 HMM 전신이었던 현대상선의 홍보실 우병선 대리였다. 아버지에게 듣기로는 작고하시기 전까지 광고를 담당했던 필자의 어머니에게 그렇게 선대해 주었던 홍보실 직원이었다고 한다. 긴장되고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명함 한 장 들고 적선동의 현대상선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당시 우병선 대리는 특유의 젠틀한 표정으로 필자를 맞아주었다. 훗날 그렇게 자주 들었던 “무역운송신문 아직 나와요?”라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전까지 광고 담당자였던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보며 왜 요즘은 안 오시냐고 되묻는 게 아닌가. 필자는 담담하게 어머니께서 몇 년간 지병을 앓았고 얼마 전 작고하셨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우병선 대리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였던 걸 필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필자에게는 그런 표정 하나도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병선 대리는 과장으로 또 차장으로 승진하면서도 현대상선 홍보실을 떠나지 않았고, 필자와 계속적인 교분을 이어갔다. 한 때 현대상선이 굉장히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도 우병선 매니저가 있던 홍보실에서는 본지를 비롯한 해운 전문지에 대한 지원을 줄이지 않았다. 그 시절 본지 역시 힘들었지만, 그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데에는 현대상선의 변함없는 지원이 있었음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우병선 씨는 이제 대한민국 최대 국적선사인 HMM 대외협력실의 책임매니저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뵐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우병선 매니저에게 지면을 빌어 참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또 한 분은 현재 해운 전문지 기자단의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해운산업신문의 김학준 국장이다. 필자는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해양수산부에 기자 등록은 했으나, 해운 전문지 기자단에서 활동하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른 선배들이 이미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틈바구니에 경력도 일천한 필자가 들어갈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기자단 차원의 간담회가 아닌 업단체 주최의 간담회 자리에는 필자도 참석했고, 그 때 선배 기자들에게 명함 돌리며 인사드리다보니 필자의 존재를 선배들 모두가 알고는 있었다. 특히 그들에게는 대선배인 필자의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라도 필자를 아예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해였나 김학준 국장이 당시 두 개로 나뉘어 있던 해운 기자단에 한 쪽 간사를 맡으면서, 필자에게 같이 취재하자는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자처럼 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은 기자는 갈 수 없는 자리였는데, 김학준 당시 간사는 필자보고 같이 와서 취재하자고 했고, 간담회 자리에서는 당신이 데리고 왔다며 필자를 업체 관계자에게 소개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김학준 국장이 왜 그렇게 필자에게 선대해 주었는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김학준 국장 덕에 필자는 더 많은 영역의 업단체 관계자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김학준 국장은 간사를 마무리하는 연말 어느 간담회에 필자를 초청했다. 같이 간담회를 취재하고 나서 헤어지려는데 김학준 국장이 갑작스레 기자단 회의를 개최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필자보고도 남아있으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필자는 가만히 앉아있는데, 그 자리에서 김학준 국장은 “이제 내년부터 이일우 기자가 우리 기자단에 합류하는 걸로 결정했습니다.”라고 선포하며 박수를 유도했다. 다른 선배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박수를 쳐주었고, 그렇게 얼떨결에 필자는 해운 전문지 기자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해운 전문지 기자단에 들어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기자단에 들어간 이후 더 많은 간담회에 참석하고 행사에 초청을 받으면서, 기자단에 들어가는 게 해운 전문지 종사자에게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런 기자단에 필자가 합류하는 데에 그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끌어준 김학준 국장에게 필자는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명, 아니 두 명을 더 꼽아보자면 기자가 참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두 선배인, 코리아쉬핑가제트의 이경희 본부장과 한국해운신문의 곽용신 부장이다. 기자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나마 비슷한 나이어서 철없이 물어보며 졸졸 쫓아다니곤 했던 두 선배이다. 두 선배의 기자로서의 능력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께서 더욱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핵심을 찌르는 글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저널리즘적인 시각과 해운 전문지 기자로서 마인드, 사교성 좋은 대인 관계 등 두 선배는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해운 전문 언론계의 탑클래스 저널리스트라고 기자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필력의 선배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필자에게 두 선배는 한 번도 귀찮다는 내색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가르쳐주면서, 17년째 해운 빼고 다 잘 아는(?) 필자의 해운 선생님이 되어 주고 있다. 두 선배가 아니었다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즐비한 이 해운 전문 언론계에서 과연 기자가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두 선배의 존재감이 필자에겐 매우 절대적이다. 두 선배와 필자 이렇게 세 사람이 언제까지 해운 전문 언론계에 몸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라기는 우리 기자단의 대선배인 이철원, 사영진 국장처럼 오래도록 이 영역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래저래 쓰다 보니 칼럼이 길어져서 2주에 나뉘어 게재하게 되었다. 그만큼 필자에게는 지난 17년의 해운 전문지 기자로서의 시간이 감사와 행복 그 자체였다. 이제 국장으로 또 발행인으로 살아갈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필자의 능력보다는 해운 업계 종사자들과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시간도 그런 도우심의 힘으로 해운 언론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39년 동안 변함없이 무역운송신문을 애독해주시고 지지해주신 독자들과 광고주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히, 본지 이종옥 발행인의 글을 사랑해주시고, 그가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도록 시간과 환경을 제공해 주신 원로 해운인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올려드린다. 2024년부터 이종옥 발행인은 발행인이 아닌 회장으로 본지 경영에는 동일하게 참여하지만, 신문 발행과 관련한 모든 부분은 필자가 국장 겸 발행인으로 담당하게 된다.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독자와 광고주 분들의 성원을 부탁드린다. 그리고 무역운송신문은 그 분들의 기대에 보답하고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론 해운 언론으로 계속 정진해 나갈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감사합니다.


- 이일우 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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